3일 티브이 토론을 벌이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왼쪽)과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대표. 유튜브 영상 갈무리
오는 24일 치러질 독일 총선을 3주 앞두고 열린 당대표 티브이 토론회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기독민주연합 대표)와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대표가 격돌했다. 토론에선 양측의 정책 대결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성토가 중심이 됐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3일 밤 8시15분부터 90여분간 이어진 토론에선 북한의 6차 핵실험 강행에 따른 대북 제제 방안과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론이 단연 화두로 떠올랐다. <워싱턴 포스트>는 “두 대표가 마치 이중창을 하는 듯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 중 누구보다도 더 많은 비판을 받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메르켈 총리는 직접적 답변을 피하면서도, 기후변화 대응 방안과 백인우월주의자가 일으킨 미국 샬러츠빌 유혈 사태에 대한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매우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북 제재 방안에 대해서는 “우리에겐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법만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며,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상반된 의견을 내놨다. 그러면서도 “미국 대통령 없이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슐츠 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며 “우리는 다른 예측 가능한 정상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협력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또 “그가 분쟁을 해결할 적절한 인물이 아니라고 본다”며 “그는 지난번 트위트로 우리를 위기에 몰아넣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독일 사회가 직면한 난제인 난민 문제와 경제 성장 방안,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스캔들도 논의됐으나, 두 대표가 의도적으로 까다로운 질문을 피해갔다는 평가가 나왔다. 슐츠 대표는 유럽연합(EU) 일부 국가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난민들에게 국경을 개방했다고 지적했고, 유럽 이민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메르켈 총리는 “국경을 넘으려는 이들에게 물대포를 쏠 수 없었다”고 응수했다. 또 슐츠 대표가 자동차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에 대한 책임을 묻자, 메르켈 총리는 “나도 (폴크스바겐) 경영진에 화가 났다. 자동차산업은 독일 경제에 가장 중요한 축이며 이 스캔들은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했다. 긴장이 높아진 터키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대표가 뜻을 같이 했다. 슐츠 대표가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을 중단시키겠다”며 “지금은 끝이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말하자, 메르켈 총리도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다”며 동의했다. 메르켈 총리는 다만 터키와의 난민협정은 타결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메르켈 총리가 우세했다는 평이 이어지며 총리직 4회 연임에 청신호가 켜졌다. 여론조사기관 포르사는 유권자 1500만명가량이 토론회를 지켜봤고 이 중 22%는 이에 기초해 투표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토론회 직후 <아에르데>(ARD) 방송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5%는 메르켈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슐츠 대표를 지지한 응답자는 35%였다. 반면 <체데에프>(ZDF) 방송 조사에선 메르켈 총리(32%)와 슐츠 대표(29%)의 격차가 불과 3%포인트여서, 슐츠 대표가 반전의 불씨를 지켜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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