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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100년 전통 베를린 ‘민중무대’ 사라지나

등록 2017-10-01 15:09수정 2017-10-01 21:08

노동계급 문화 향유 위해 설립…세계적 명성
관객 차별 없고, 극단 구성원들도 동등 지위
새 총감독, 큐레이팅으로 전통과 결별 시도
경찰, 전통 지키려는 이들 점거농성 강제 해산
지난 28일 저녁 독일 베를린의 로자 룩셈부르크 광장의 극장 폴크스뷔네(민중무대) 앞. 확성기에선 테크노 음악이 흐르고, 남녀노소가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한쪽에선 함께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도 바쁘다. 그런데 주위엔 경찰차가 늘어서 있고 경찰의 경비가 삼엄하다. 이날 오전 일주일간의 폴크스뷔네 점거 농성이 강제 해산된 직후였다.

100년 넘는 전통에 세계적 명성을 지닌 폴크스뷔네가 ‘문화 계급투쟁의 중심 무대’가 됐다. ‘베를린판 월가 점령 시위’로 불리는 이번 농성은

폴크스뷔네의 총감독 크리스 데르콘의 부임이 발단이었다. 벨기에 출신인 그는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스타 큐레이터이 출신이지만 “폴크스뷔네의 뿌리를 뽑을 것”(<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라는 우려를 일으켰다. 급기야 올 여름 폴크스뷔네 단원들의 보이콧이 발생했다.

이런 우려와 저항에는 폴크스뷔네의 독보적 전통이 배경에 있다. 폴스크뷔네는 1914년 노동계급의 문화적 향유권을 위해 만들어졌다. 19세기 말에 일기 시작한 같은 이름의 운동의 산물이다. 동베를린에 있는 폴크스뷔네의 배우들은 1989년 동독 민주화운동에도 열렬히 참여했다. 통독 후 최근까지 총감독을 맡았던 프랑크 카스트로프는 폴크스뷔네의 ‘프롤레타리아 정신’을 잇는 한편 실험적 연출을 선보이며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이 극장을 회생시켰다. 폴크스뷔네가 쌓아온 전통은 ‘앙상블 극장’이다. 앙상블 극장은 정규직 무대 디자이너, 기술자, 배우들이 함께 매주 다양한 작품과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안정적 시스템을 제공한다. 주연 배우나 청소하는 사람이나 같은 지위를 누렸고, 연극의 기획에서부터 소품 마련까지 한곳에서 공동의 노력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데르콘은 ‘자유극장’으로의 변신을 꾀한다. 외부에서 만들어진 작품에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미술관처럼 인기 공연들을 큐레이팅하는 방식이다.

폴크스뷔네를 둘러싼 갈등을 문화 영역의 신자유주의화와 상업화의 상징으로 인식한 이들은 저항 공동체를 꾸렸다. 극장을 점거한 장본인들이 만든 공동체 이름은 ‘먼지에서 반짝이로’. 30여명의 활동가들이 3개월 동안 점거하겠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짧게 끝난 점거 기간 동안 다양한 이들이 폴크스뷔네를 찾았다. 유명 배우와 가수들도 공연을 해주겠다고 자청했다. 점거 농성의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예술에 대해 얘기했다. 연극과 폴크스뷔네의 운명을 넘어서 정치적 문제로 주제가 옮겨가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반대 움직임도 커졌다. 베를린에서는 돈이 몰리며 도심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점거 농성 참가자는 500석 규모의 극장을 채울 정도로 불어났지만, 경찰은 이들을 해산시키면서 거부하는 이들은 억지로 끌어냈다. 비록 점거는 끝났지만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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