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여기자의 무릎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사임을 발표하는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
마이클 팰런 영국 국방장관이 15년 전에 여기자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정작 그 여기자는 당시 성희롱을 느끼지 못했다며, 가장 터무니없는 사임으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팰런 장관은 1일 과거에 여성에 대한 자신의 행동이 “부족했다”며 사임을 밝혔다. 앞서 이번주 들어 그는 15년 전에 언론인 줄리아 하틀리-브루어의 무릎에 반복해서 손을 얹는 등 당사자에게 원치 않는 신체접 촉을 했다고 사과했다.
정작 당사자인 하틀리-브루어는 <비비시> 방송에 출연해 “그가 15년 전에 내 무릎에 손을 대서 사임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우주의 역사상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임이다”며 “나는 그것 때문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임한 팰런의 주변에서는 그에게 최근에 유사한 사건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그의 사임은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팰런의 사임은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추문이 야기한 고발 사태인 ‘미 투 캠페인’이 영국 의회 내에서도 몰아친 여파로 받아들여진다.
앞서 하틀리는 지난 2002년 한 회의 만찬장에서 한 내각 차관이 “내 무릎에 거듭 손을 올려놨다”고 밝혔다. 하틀리는 그 차관에게 “다시 한 번 그러면 얼굴에 주먹을 날려줄 것이라고 조용하고 정중하게 경고했고, 그는 손을 거두었다. 그게 그 일의 끝”이라고 말했다. 하틀리는 “당시 성희롱을 당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며 “약간 재미있는” 사건으로 표현했다.
팰런 국방장관 사임을 이유가 된 성희롱 당사자인 줄리아 하틀리-브루어는 그의 사임이 우스꽝스럽다며 다른 이유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중지 <선>은 그 인물이 팰런 장관이라고 지난 31일 보도했다. 팰런 장관은 <선>에 당시에 하틀리에게 사과를 했고, 그 일은 거기서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팰런은 며칠 만에 급작스럽게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테리사 메이 총리에게 보낸 사직서에서 “최근에 나의 과거 행동을 포함해 의원들에 대해 많은 혐의들이 드러났다”며 “내가 영광스럽게 대표해야 할 군에게 요구되는 높은 기준에 부족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팰런은 추가 폭로가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냐는 <비비시>의 질문에 “몇 년 사이에 문화가 바뀌었다. 10년이나 15년 전에 받아들여 질수도 있던 것이 지금은 확실히 아니다. 의회는 지금 그 자신을 살피고, 총리는 행태들이 개선돼야 할 필요가 있음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팰런의 사임은 와인스틴 사건으로 촉발된 성폭력 고발 캠페인이 영국 정치권으로까지 확산된 이후 첫 고위 공직자의 사임이다.
메이 총리의 측근인 데미언 그린 국무장관도 과거의 성희롱 사례가 폭로되어 사임 압력을 받고 있다. 보수당과 관련이 있는 여교수인 케이트 몰트바이는 그린이 자신에게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했다고 폭로했고, 그린은 이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메이 총리는 이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보수당 하원의원이자 국제통상부 차관인 마크 가니어는 여성 비서에게 성인용품 심부름을 시킨 사실이 알려져 조사를 받게 됐다. 전직 각료인 스티븐 크랩 의원은 면접을 보러온 19세 여성 지원자에게 성적으로 노골적인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 등이 드러났다. <이브닝 스탠더드>는 한 보수당 의원이 사무실에서 여직원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성적으로 공격했다고 폭로했다. 의회에서 인턴으로 일한 제임스 그린핼그라는 청년도 한 의원이 술집에서 자신을 껴앉고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고 밝혔다.
<선>은 집권 보수당 의원들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이 익명으로 작성한 ‘성희롱 명단’에 전·현직 각료 21명을 포함해 보수당 의원 36명의 이름이 올라있다고 보도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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