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공문서에 ‘남’ 또는 ‘여’가 아닌 제3의 성도 표기하기로 했다. 유럽 최초의 조처로, 간성(間性)이나 한쪽의 성 정체성을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제도적 보호를 강화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데페아>(DPA) 통신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8일 간성인 등을 위한 성별 표시를 창설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연방정부는 내년 말까지 법률을 마련해 새로운 성을 출생 증명 서류 등에 표기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염색체 분석에서 간성으로 분류된 독일인 8만여명뿐 아니라 트랜스젠더를 비롯해 남·여 한쪽의 성적 정체성을 거부하는 이들도 제3의 성으로 등록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방헌재는 성별 구분이 “개인의 정체성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인식하는 데도 일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연방헌재는 개인의 기본권과 차별 받지 않을 권리라는 헌법 조항이 판결 근거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공문서상 여성으로 등재됐으나 염색체 분석에서 간성으로 판명된 이가 낸 소송의 결과다. 그는 “중간”이나 “다른”이라는 식의 표현으로 자신의 성을 적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방헌재는 제3의 성을 표기할 명칭은 제시하지 않은 채 “관련자들에게 긍정적 명칭을 고를 기회”를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독일은 2013년부터 양쪽 성의 특성이 섞여있는 아이의 출생 신고 때 부모가 성별을 공란으로 놔둘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연방헌재는 헌법이 두 개의 성만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라서 이런 조처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미국의 몇 개 주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몰타, 네팔이 신분증명서와 여권에 제3의 성을 적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는 올해 8월부터 제3의 성을 ‘X’로 표기한다.
유엔은 세계의 간성 인구를 0.5~1.7%로 추정한다. 유엔은 양쪽 성의 특질이 모두 있으나 한쪽 성으로 규정된 아이들이 강제 불임이나 생식기 수술 등의 고통을 받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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