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보단 프랄랴크가 29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옛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 항소심 중 억울함을 호소하며 독약을 삼키고 있다. 헤이그/AFP 연합뉴스
보스니아 내전 당시 무슬림 학살 작전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크로아티아 사령관 출신 슬로보단 프랄랴크(72)가 옛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징역 20년이 확정되자 “선고를 거부한다”며 법정에서 음독자살했다.
<비비시>(BBC) 방송을 보면, 프랄랴크는 29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엔 산하 ‘옛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도중 재판부가 징역 20년인 원심을 확정한다고 판결하자 크로아티아어로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며 “이번 선고를 거부한다”고 소리쳤다.
이후 재킷 안쪽에서 작은 병을 꺼내 내용물을 마시고 “독약을 먹었다”고 했다. 당황한 재판부는 즉시 의료진을 불러 그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사망했다. 텔레비전 중계 화면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법정에 입장하기 전 보안검색대를 통과했고, 가족과 친구 등 외부인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었던 그가 어떤 경로로 독약을 소지할 수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날 법정에서는 프랄랴크 등 크로아티아인 6명에 대한 판결이 예정돼 있었다. 프랄랴크의 변호인은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며 “그는 자신이 결백하다고 믿고 있었다”고 했다. 프랄랴크는 20년 형량 중 이미 13년을 복역한 상태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였던 프랄랴크는 보스니아 내전이 진행 중이던 1993년 이 지역의 크로아티아 방위군 사령관이 됐다. 특히 모스타르 지역에서 무슬림 주민을 인종청소하는 작전을 이끈 것으로 드러났다. 또 16세기에 지어진 역사적 유산 ‘옛 도시의 다리’와 모스크를 파괴하고 국제기구 활동가들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당시 보스니아계 무슬림과 세르비아계, 로마(집시) 주민 1만명 이상이 옥에 갇히고 수만명이 도망친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성과 노인은 학대와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기도 했다. 그는 2004년 기소됐으며 2013년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안드레이 플렌코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는 “그의 행동은 크로아티아인 6명에 대한 재판부의 ‘도덕적 부당성’을 말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 판결에 대해 후회하고 불만을 표한다”고 밝혔다.
옛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는 지난 22일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 군사령관에게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을 지휘했다는 이유로 종신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 재판소는 1993년부터 총 161명을 전쟁 범죄 혐의로 재판했고, 올해 말 문을 닫는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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