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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프라하의 봄’ 50돌에 갈라지는 동-서 유럽

등록 2018-01-29 16:07수정 2018-01-29 20:47

체코 대선에서 친러시아 노선 대통령 재선
반이민·반무슬림 정서 업고 포퓰리즘 승리
EU, ‘법치 위반’ 폴란드·헝가리와도 대립
EU, “민주주의 원칙 위반하면 제재” 경고
동유럽은 ‘서유럽과의 거대한 투쟁’ 맞불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이 27일 당선 축하 꽃다발을 받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프라하/EPA 연합뉴스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이 27일 당선 축하 꽃다발을 받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프라하/EPA 연합뉴스
1968년 1월에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제1서기에 오르면서 동유럽 반소 항쟁의 기념비인 ‘프라하의 봄’이 시작됐다. 50년 뒤, 체코의 자유주의자들은 그들이 희망한 대선 결과를 들고 ‘프라하의 봄’을 기념하고 싶어 했지만 친러시아 노선 대통령의 재선으로 물거품이 됐다.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은 27일 결선투표에서 51.4%를 얻어 48.6%에 그친 친유럽연합(EU) 성향의 이르지 드라호시 후보를 누르고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재선됐다. 유럽연합 쪽이 내심 당선을 기대한 드라호시 후보는 1차 투표로 탈락한 후보들이 대부분 지원했지만 대통령궁에 입성하지 못했다. 드라호시 후보는 선거 막바지에 자신에 대해 무슬림을 대거 받아들일 것이라거나 소아성애자라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며 “러시아 비밀 정보기관이나 그와 연결된 조직이 연루돼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하기도 했다.

유럽연합 주류와 동유럽의 대립이 날카로워진 가운데 나온 체코 대선 결과는 유럽연합에 새로운 도전을 안기고 있다. 동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자유주의적이라던 체코의 정치 지형도 ‘반유럽연합’으로 굳어진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제만 대통령은 체코가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데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유대감을 과시해 왔다.

제만 대통령은 반무슬림·반이민 정서를 십분 활용해 재선에 성공했다. 유럽연합이 할당한 난민 수용 인구 2600명 중 단 12명만 받아들인 그는 “무슬림의 조직적 침공”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다수당으로 떠올랐으나 지난 24일 유럽연합 보조금 관련 사기 논란 등으로 불신임당한 ‘불만족하는 시민들의 행동’의 안드레이 바비시를 다시 총리로 삼아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재벌인 바비시는 ‘체코의 트럼프’로 불리며 강한 포퓰리즘 성향을 보인다. 제만 대통령의 당선 수락 연설이 진행된 프라하의 호텔에서는 그의 지지자들이 기자들을 폭행해, 기성 언론에 대한 포퓰리즘 진영의 반감이 표출되기도 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유럽연합은 유럽 차원의 정책에 반기를 들며 포퓰리즘과 권위주의가 강화되는 폴란드·헝가리 정부와도 마찰을 빚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폴란드 정부가 대법관의 40%를 해임할 수 있고 지방법원 판사들에 대한 임면권을 틀어쥐는 내용의 입법을 강행하자 지난달 최후통첩을 했다. 지난 2년간 폴란드 정부가 마련한 13건의 법률은 사법 독립과 민주주의를 해쳐 유럽연합의 헌법 격인 리스본조약의 “심각한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약 제7조에 의거한 조사를 개시한 것이다. 유럽연합이 회원국의 표결권 박탈로 이어질 수 있어 ‘핵 옵션’으로 불리는 이 조항을 꺼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폴란드 정부는 이달 초 국영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고위직들을 정부가 직접 임면하는 법도 시행에 들어갔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헝가리의 경우 대학이나 시민단체에 대한 외국의 지원을 금지하는 입법으로 시민사회를 탄압한다며 지난달 유럽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헝가리·체코·폴란드가 난민 의무 할당을 거부한 것도 별도로 제소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옛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을 때는 서유럽이 구원해주기를 고대한 세 나라는 2004년에 유럽연합에 동시에 가입했다. 초기에만 해도 유럽연합의 모범생으로 불렸으나, 난민·이민 문제와 함께 통합의 과실이 주로 엘리트층에 돌아간다는 불만이 포퓰리즘 정권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뉴욕대 프라하 캠퍼스의 이르지 페헤 교수는 체코 대선 결과에 대해 “공산주의 붕괴 30년 만에 사회가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며 “소도시의 노년층은 안전을 보장해준 과거 정권에 향수를 지닌 반면 젊은 세대는 현대성에 보다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동유럽 중견국 세 곳이 민주주의와 법치라는 기본 이념을 저버린다며 대응에 나선 반면, 세 나라는 내정 간섭이라며 맞서는 양상이다. 폴란드 하원이 ‘아우슈비츠 해방 기념일’을 하루 앞둔 26일 자국에 있던 이 수용소를 ‘폴란드 집단 처형장’으로 부르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민족주의 정서에 부응하는 조처로 보인다. 영국이 탈퇴하기로 한 마당에 동유럽까지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유럽연합은 동서 양쪽에서 분열주의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은 더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달 초 헝가리를 방문해 유럽연합의 폴란드에 대한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자리에서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2018년은 포스트 기독교와 포스트 민족주의 시대로 유럽을 이끌려는 나라들과의 거대한 투쟁의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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