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마르케주 마체라타에서 10일 시민 3만여명이 모여 반인종주의 시위를 벌이며 행진하고 있다. 시위대 앞에 들린 대형 현수막에는 ‘모든 파시즘과 인종주의에 저항하는 운동’이라고 적혀있다. 마체라타/EPA 연합뉴스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주 마체라타 도심에서 10일 시민 3만여명이 참여한 대규모 반인종주의 시위가 벌어졌다. <데페아>(DPA) 통신은 이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이 “모든 종류의 인종주의와 파시즘을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보도했다. 북부 밀라노와 볼로냐, 토리노에서도 같은 기치를 내건 시위가 열렸다. 마체라타 당국은 마을 일부 지역을 폐쇄했고, 대중교통 운행도 제한했다. 학교와 상점도 혹시 모를 충돌을 피해 문을 닫았다.
이번 시위는 지난 주 발생한 극우 성향 백인 루카 트라이니(28)의 흑인 총격 사건을 규탄하고자 조직됐다. 트라이니는 지난 3일 자동차를 타고 마체라타시 중심가를 돌면서 흑인을 무차별적으로 저격해 아프리카계 이민자 6명이 부상했다. 경찰에 순순히 붙잡힌 뒤에는 파시스트식 경례를 했다. 그는 지난해 6월 극우정당인 북부동맹 소속으로 반이민 기조를 내세워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전력이 있었다. 트라이니는 지난달 30일 벌어진 18살 소녀 파멜라 마스트로페이트로의 시신 유기 사건에 나이지리아 출신 남성들이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라디오 뉴스로 들은 뒤, 우발적으로 흑인 대상 범행에 나섰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연달아 발생한 두 사건은 총선(3월4일)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이탈리아에 이민자 문제에 대한 논란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파 정치인들은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이민자를 앞세워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모습이다. 트라이니를 응원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났다. 우파연합을 결성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난민은 터질 준비가 된 사회적 폭탄”이라며 난민 60만명을 본국으로 송환시키겠다는 공약까지 내세웠다. 지난 7일 밤에는 극우 정당인 ‘새로운 힘’ 당원들이 마체라타에서 이민자 유입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가디언>은 작가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이탈리아에 돌아온 파시즘이 정치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있다’는 칼럼을 실고 “모든 선거운동이 이민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외국인에 대한 증오는 비도덕적인 정치, 무책임한 정보 확산과 경제 위기가 혼합돼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민자 문제는 선거에 맞춰 계산된 결과이며, 북부동맹이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항상 자신들의 주장에서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등장시키는 이야기”라며 “더이상 좌·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비비시>(BBC) 방송을 보면 2014년부터 최근까지 이탈리아로 유입된 난민은 5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에리트레아, 기니 등에서 내전이나 기근을 피해 지중해를 건넜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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