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2일 의회에서 전직 러시아 스파이 피습 사건에 대해 러시아 개입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지난 4일 영국 윌트셔주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 의자에서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된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66) 부녀에게 사용된 신경가스가 1970~1980년대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한 ‘노비촉’인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정부의 짐작대로 러시아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2일 의회에 출석해 “러시아 정부의 개입 가능성이 아주 크다”며 “러시아의 직접적 행위이거나, 러시아 정부가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신경가스를 통제하지 못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게 둔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 총리는 “우리 땅에서 무고한 시민을 죽이려는 대담한 시도를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영국 정부 누리집 갈무리
영국 국가안보회의(NSC)는 이번 사건에 사용된 신경가스가 노비촉이라고 발표했다. 러시아어로 ‘새로운 인물’을 뜻하는 노비촉은 일부 변종의 경우 VX 신경가스보다 5~8배 치명적이다. 고체나 액체 상태로 사용되는 이 물질은 다른 화학물질과 섞일 때 더 강력한 독성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영국과 러시아의 외교 분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은 일단 13일 자정까지 영국 주재 러시아대사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영국 정부는 “믿을 만한 응답이 없을 경우 이번 사건이 러시아 정부가 영국에 행한 불법적 무력 사용인 것으로 결론낼 것”이라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날렸다. <가디언>은 알렉산더 야코벤코 주영 러시아대사가 추방당할 가능성까지 있다고 내다봤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도 “(노비촉은) 분명히 러시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널리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몇몇 곳만 제한적으로 알기 때문”이라며 영국 편을 들었다.
이번 공격은 러시아 대선(18일)를 2주 앞두고 발생했다. 4선을 노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보수적 지지층에게 충격을 줘 투표율이 올라갈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메이 총리의 발언이 “도발”이라고 맞받아치면서, “영국 의회의 서커스”라고 비난했다. 안드레이 루고보이 러시아 하원의원도 메이 총리가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루고보이는 2006년 역시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전직 스파이 알렉산더 리트비넨코 피폭 사망 사건 용의자로 지목됐으나 2007년에 두마(하원)에 입성한 인물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비비시>(BBC) 방송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하고 그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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