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19일 결혼식이 끝난 뒤 애스콧 사륜마차를 타고 윈저성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켄징턴궁 공식 누리집 갈무리
“혼혈 미국인이 이젠 공작부인이 됐다. 메건 마클이 군주제에 발자취를 남겼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19일 낮 12시(현지시각) 영국 윈저성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열린 해리 왕자(34)와 미국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37)의 결혼식을 “모든 것이 바뀐 하루”라며 이렇게 표현했다. <시엔엔>은 “혼혈 미국인이 영국 왕위 계승 6위와 결혼했다는 것은 군주국 영국이 시민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좀 더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인, 아프리카계 혼혈이라는 인종적 특성, 배우라는 직업…. 그동안 이어진 영국 왕실의 수많은 전통을 깨고, 결혼식장에 들어선 마클의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줬다. 윈저성 주변엔 영국 국기인 유니언잭과 미국 성조기가 함께 걸렸고, 시민 10만여명이 몰려들었다. 결혼식장에는 6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해 ‘로열 웨딩’을 축하했다.
이날 오전 11시35분께 영국 왕실 전통에 따라 군복을 차려입은 해리 왕자가 교회 앞에 등장했다. 이어 10분 뒤 마클이 어머니 도리아 래글랜드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마클은 영국 디자이너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만든 프랑스 브랜드 지방시의 드레스를 입었다. 16.5피트(5m)에 달하는 긴 베일과 물망초로 만든 부케는 해리 왕자의 어머니인 고 다이애나비를 떠올리게 했다고 <시엔엔>은 밝혔다. 마클은 친아버지가 참석하지 않아, 시아버지인 찰스 왕세자의 팔짱을 낀 채 교회 안으로 입장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다양성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례는 영국 성공회 수장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맡았으나, 설교는 흑인으론 처음으로 미국 성공회 주교에 오른 마이클 커리 신부가 했다. 커리 신부는 흑인민권운동을 대표하는 미국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사랑의 힘이 옛 세상을 새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며 “사랑은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마클이 낀 결혼 반지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하사한 웨일스산 금에 고 다이애나비가 소장하던 다이아몬드가 박힌 것으로 알려졌다.
19일 영국 윈저성 세인트 조지 교회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두 손을 꼭 잡고 마차에 올라타려 하고 있다. 뒤편엔 왕실 가족과 함께 마클의 어머니(왼쪽 셋째)가 서 있다. 켄징턴궁 공식 트위터 갈무리
흑인 다수로 꾸려진 잉글랜드 합창단이 벤 E 킹의 솔뮤직의 대표곡인 ‘스탠 바이 미’를 불렀다. 또 흑인 첼리스트 세쿠 카네 메이슨이 아베 마리아 등을 연주했다. 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는 ‘애스콧 사륜마차’를 타고 윈저성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왕실 가족은 총출동했으나, 신부 쪽에선 어머니만 자리를 빛냈다. 하객으론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배우 조지 클루니 부부, 영국 흑인 테니스선수 세리나 윌리엄스와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부부, 가수 엘튼 존 등이 얼굴을 비췄다. 저녁엔 찰스 왕세자가 윈저성 인근 프로그모어 하우스에 200여명을 초대해 연회를 열었다.
해리-마클 부부는 당장 신혼여행을 떠나지 않고, 노팅엄 코티지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2016년 7월 지인 소개로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전해진다.
마클은 오는 22일 찰스 왕세자의 70세를 기념해 버킹엄궁 잔디밭에서 열리는 자선 단체 후원 행사에 공식 참석하면서, 왕실 가족 일원으로 데뷔한다. 결혼식 날 공작 작위를 받는 영국 왕실 전통에 따라 이날 해리 왕자는 서식스 공작, 덤바턴 백작, 카이킬 남작 작위를 받았다. 마클은 서식스 공작 부인으로 불리게 된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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