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신흥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프로축구클럽 첼시의 구단주인 러시아 신흥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52)가 영국에 체류하기 위해 이스라엘 시민권을 따냈다고 <가디언>이 28일 보도했다. 영국 정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자신의 ‘티어1’ 비자를 연장해주지 않자, 우회로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은 지난주 아브라모비치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면접을 봤고, 조만간 텔아비브로 이주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언론 <예디호트 하로노트>와 <와이넷>(Ynet)도 아브라모비치가 이날 텔아비브로 날아가 이스라엘 시민으로서 자신의 신분을 확인하는 서류를 받았다고 전했다.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아브라모비치는 “유대인을 시민으로 받아들인다”는 취지의 이스라엘 귀환법(law of return)에 따라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시민권을 발급한다. 이스라엘 여권도 즉시 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 여권 소지자는 영국에서 단기 체류할 때 비자가 필요 없어, 아브라모비치는 이제 영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지난달 1일 이후 비자가 갱신되지 않아 영국에 입국할 수 없었던 아브라모비치는 19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017-2018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결승전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 경기에서 첼시는 맨유를 1-0으로 꺾고 2012년 이후 6년 만에 우승컵을 차지했다. 아브라모비치는 2003년부터 첼시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아브라모비치가 갖고 있던 티어1 비자는 영국에 최소 200만파운드(약 28억6376만원) 이상 투자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발급돼 왔다. 이 비자를 받으면 40개월간 체류할 수 있다. 영국 언론들은 아브라모비치의 비자가 갑자기 갱신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외신들은 영국 정부의 이 조처가 지난 3월 발생한 러시아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의 암살 시도 사건에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 사건의 배경에 러시아가 있다고 보고,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하고,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를 단행했다. 또 러시아 부호 700여명이 소유한 티어1 비자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석유 사업을 벌이던 아브라모비치는 국제 유가 상승으로 신흥 재벌로 부상했으며, 1999년 러시아 추코트카 자치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2001년부터 8년 동안 주지사로 일했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은 그가 10년간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입에 대한 세금을 면제받게 될 예정이고, 이 기간 동안 재산 출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그의 재산은 <포브스> 기준 86억파운드(약 12조3133억원)에 달한다. 그는 그동안 이스라엘 기업과 이들이 참여한 투자 프로젝트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했고, 지난 20년간 유대인 관련 자선단체에 5억달러(약 5381억원) 넘는 돈을 기부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시민권을 취득하자마자 이스라엘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됐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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