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버버리 매장. 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의 대표적인 명품업체 버버리가 지난해 ‘브랜드를 지켜내기 위해’ 멀쩡한 의류와 화장품 약 420억원어치를 폐기했다고 <가디언>이 19일 보도했다. 이는 개당 200만원을 웃도는 버버리의 대표적 제품 트렌치코트로 따지면 2만벌 분량이다.
이 회사 연례 보고서를 보면 버버리는 지난해 화장품 1040억파운드(153억4884만원) 등 2860만파운드(422억8281만원)어치 자사 제품을 불태워 없앴다. 버버리는 자사 상표가 부착된 제품에 한해 폐기했고, 친환경적 방법으로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전문 회사들과 작업했다고 했다. 이어 “공급망을 유지해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고 불법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버버리 쪽 대변인은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의 과잉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제품 폐기가 필요할 땐 책임감 있게 처리하고 폐기물을 줄이거나 재사용하는 방안을 지속해서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엘렌 맥아더 재단에서 제안한 패션 산업 육성 계획에 따라 자원 낭비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고를 싸게 팔기보다 없애는 것은 고급 브랜드의 오랜 관행 중 하나다. 가격이 크게 떨어진 상태로 판매할 경우 ‘하이 패션’이란 이미지를 지킬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환경운동가와 누리꾼들은 패션 업계의 무분별한 자원 낭비를 비판했다.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에서 ‘디톡스 마이 패션 캠페인’을 이끄는 커스틴 브로더는 “제품과 그것을 만드는 데 사용한 노동력, 자원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디자이너는 <인디팬던트>에 “브랜드 보호를 위한 것이다. 그들은 자사 제품이 ‘잘못된 사람들’에게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꼬집었다. 버버리의 남성 폴로 셔츠는 250파운드(36만원), 트렌치코트는 1500파운드(220만원)에 달한다.
<더 타임스>는 지난 5년간 9000만파운드(1330억원) 상당의 버버리 제품이 폐기됐으며, 주주들은 왜 팔리지 않는 제품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제공하지 않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영국, 유럽 국가 내 버버리 제품 판매량은 관광객 감소로 크게 떨어진 상태다. <가디언>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홍콩, 한국, 일본에선 버버리 제품의 판매량이 여전히 증가세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스웨덴 스톡홀름 북서쪽 바스테라스 발전소는 석탄 대신, 패스트패션(SPA) 브랜드 에이치앤엠(H&M)의 의류를 연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 발전소에서 11개월 동안 태워진 의류는 15t 분량이었다. 에이치앤엠은 “파손된 재고품 중 곰팡이나 납 오염이 있는 제품에 한해 태웠다”고 밝혔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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