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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왜 치욕을 재연하나”…베를린장벽 부활 대규모 프로젝트 ‘제동’

등록 2018-10-05 14:52수정 2018-10-05 15:07

독일 베를린서 장벽 재연 퍼포먼스 계획
‘끔찍한 과거 떠오르게 한다’ 반발
베를린시는 ‘안전’ 이유로 불허 통지
1961년 동베를린 쪽에서 장벽 보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  research.archives.gov
1961년 동베를린 쪽에서 장벽 보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출처: research.archives.gov
독일 사회의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된 베를린장벽 퍼포먼스 ‘다우 프라이하이트’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행사 주최 기관 베를리너 페스트슈필레는 베를린 중심가 운터 덴 린덴 근처에서 10월12일부터 11월9일까지 장벽 퍼포먼스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지난 8월 말 발표했다. 그런데 행사 시작을 눈앞에 두고 베를린시 산하 관청에서 ‘안전’을 이유로 불허가 결정이 내려졌다. “이런 규모의 행사는 도심에 적합하지 않다. 포츠담 바벨스베르크 영화 세트장에서 하는 게 마땅하다”는 이유다.

독일 문화계 인사들은 대부분 이 행사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유명 감독 톰 티크베어, 연방정부 문화부 장관, 베를린 시장은 환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불허 방침이 발표되자 독일 문화위원회 위원장 크리스티안 회프너는 “만일 이 행사가 형식적, 기술적 문제로 좌절된다면 정말 유감이다. 우리 사회에는 자유 없는 사회가 어떤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장벽 퍼포먼스를 둘러싸고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그런 목소리는 주로 옛 동독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터져나왔다. 동독 민주화운동가였던 콘라드 바이스는 모니카 그뤼터스 문화부 장관과 미카엘 뮐러 베를린 시장에게 “베를린이 장벽으로 또 치욕을 겪는다는 생각을 하니 견딜 수 없다. 며칠 동안이라 하더라도 참을 수 없다”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보냈다. 그는 “특히 장벽에서 희생된 이들의 가족을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 프로젝트는 예술적 도발이 아니라 공산주의 범죄를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분위기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장벽 퍼포먼스는 ‘다우 프라이하이트’, 독일어로 ‘자유’(freiheit)라는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 있다. 이 퍼포먼스는 범유럽 대형 종합예술프로젝트 ‘다우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곧 파리에서는 ‘박애’, 런던에서는 ‘평등’이란 타이틀을 내걸고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들은 엄격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어 구체적 내용은 알기 어렵다.

일부 알려진 내용을 보면, 이번 퍼포먼스는 방문자들이 ‘비자’를 발급받아 베를린장벽을 재현한 곳에서 자유가 박탈된 삶과 전체주의 체제를 경험해보는 기회다. 동베를린 민주화운동가 출신 인사들은 이런 퍼포먼스 자체를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번 퍼포먼스가 포함된 ‘다우 프로젝트’의 후원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운 러시아 재벌 세르게이 아도니예프라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유럽 여러 지역을 무대로 기획되고 있는 ‘다우 프로젝트’는 러시아 출신 영화감독 일리아 크르자노프스키(43)가 2005년부터 이끌고 있는 대형 장기 종합예술 프로젝트다. 그는 우크라이나 카르키프에서 1만2000㎡에 달하는 거대한 세트에서 400여명이 가상의 삶을 살게 하면서 그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찍었다. 세트는 소련이 1938년부터 68년까지 비밀리에 운영한 연구소를 모델로 했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레프 란다우가 연구 활동을 한 곳이다. ‘다우’란 제목은 물리학자 란다우의 별명을 따서 만들었다. 배우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일반인들을 캐스팅했다. 직업이 배우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노벨상을 받은 학자, 청소부, 요리사, 범죄 출신 등이 참여했다. 의상과 세트는 소련에서의 삶을 그대로 재연했고, 배우들은 세트 안 삶을 실제 삶인 듯 살아야 했다. 이들은 2년 넘게 외부와 격리돼 살며 영화를 찍었다.

다우 프로젝트는 홈페이지에 “이들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친구를 배신하기도 하고, 불륜에 빠지기도 하며 실험을 해나갔다. 아이들도 태어났다. 세트 속 삶은 1968년에 끝났지만 실제로는 2011년이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700시간의 영화 자료를 13편의 극영화와 여러 시즌의 텔레비전 드라마로 편집했다. 이번 베를린장벽 퍼포먼스 때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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