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87년 12월8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중거리 핵전력 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백악관 아카이브 갈무리
1987년 미국과 러시아가 체결한 ‘중거리 핵전력 조약’(INF)의 러시아 쪽 서명자인 미하일 고르바초프(87)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조약 파기 방침을 강력히 비판했다. 고르바초프는 21일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 인터뷰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오래된 비무장(비핵화) 합의를 찢어버려선 안 된다”며 “워싱턴은 조약 탈퇴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 진정 이해하지 못하고 있느냐”고 말했다. 이어 “아이엔에프를 끝내는 것은 실수”라며, “이 조약을 거부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혜의 부족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적어도 2014년부터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해왔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은 탈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네바다주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조약을 폐기하고 탈퇴할 예정”이라며 “우리는 조약을 존중했지만, 러시아는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어떤 점을 위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지난해부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언급된 크루즈 미사일 개발과 배치를 문제 삼은 것으로 추측된다.
러시아는 냉전의 암흑기로 돌아갈 수 있다고 위협하면서 맞대응을 예고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22일 “이런 체계(미국의 중거리 핵미사일)가 개발되면 러시아도 이 영역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2일부터 이틀간 러시아를 방문해 아이엔에프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첫날 러시아의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만나고, 23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면담한다.
유럽을 사정권에 둔 핵미사일들을 없앤 조약이 폐기 위기에 몰리자 유럽 국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1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유럽의 안보와 전략적 안정에 있어 이 조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도 “그 조약은 지난 30년간 유럽 안보 구조의 중요한 기둥이었다”며 미국의 폐기 방침에 반대했다. 반면 개빈 윌리엄슨 영국 국방장관은 “절대적으로 미국과 함께한다”며 미국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아이엔에프는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가 체결한 군축 협정으로,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형 중·단거리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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