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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파독 간호사들 ‘눈물과 보람’으로 차린 40돌 생일잔치

등록 2018-10-24 16:51수정 2018-10-24 20:59

베를린 재독한국여성모임 연극
‘옹헤야, 딸들아 일어나라’ 공연
‘한인여성들 발자취’ 3년간 준비
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들이 창설 40돌을 맞아 무대에 올린 연극 <옹헤야, 딸들아 일어나라>에서 간호사 차림으로 지난 삶을 연기하고 있다. 베를린/사진 한주연 통신원
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들이 창설 40돌을 맞아 무대에 올린 연극 <옹헤야, 딸들아 일어나라>에서 간호사 차림으로 지난 삶을 연기하고 있다. 베를린/사진 한주연 통신원
“74년 세월을 한 시간 반으로 압축했어요. 최고령 회원이 74살이니까요.” 무대 위에 74년간의 슬픔·한숨·눈물·애환이 굽이굽이 펼쳐졌다. 지난 20일 저녁, 베를린 템펠호프에 있는 대안문화 공동체 우파 파브리크에선 특별한 생일잔치가 열렸다. 재독한국여성모임의 옛 회원·가족·교민·독일인 친지 등이 220여석 공연장을 꽉 채웠다.

이번 무대를 위해 “힘차고, 정 많은 언니들”이 다시 뭉쳤다. 모임 결성 40돌을 맞아 회원들 사진·편지·에피소드를 모아 다큐멘터리 뮤지컬 연극으로 만들어 축하 손님들을 맞았다. 회원들은 2015년부터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내용으로 직접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했다. 한국과 독일의 민요, 가요, 동요, 록, 민중가요까지 각종 장르의 노래를 개사해 불렀다. 짧은 가사 속에 40년 활동을 녹여냈다.

제목은 <옹헤야, 딸들아 일어나라>. 독일 이주 한인 여성들의 40년 ‘여성 해방’ 과정을 요약 정리했다. 이들은 1978년 세계 경제 위기를 맞아, 파독 간호사들이 해고·송환당하는 사례가 늘자 거리로 나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로써 장기체류 허가를 손에 얻자 힘을 합치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 기세를 모아 공부하는 정기 모임으로 만들었다. 한국과 독일의 정치·사회·역사를 공부하고, 다른 단체와 연대하면서 한국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도우미 구실을 자처했다. 독일 의류회사의 횡포를 알려 한국 노동자들의 부당해고를 철회시킨 보람된 순간도 무대로 표현했다.

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들이 무대에서 창설 40돌을 알리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 베를린/사진 한주연 통신원
재독한국여성모임 회원들이 무대에서 창설 40돌을 알리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다. 베를린/사진 한주연 통신원
“서명해주세요!”라는 외침으로 막을 연 연극은 이제 할머니가 된 회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옛 이야기로 이어진다. 연극 초반에 세상을 떠난 회원들의 “혼을 불러와 함께 놀자고” 위령굿도 했다. 식민지 시절 딸로 태어나 조부모한테 홀대받던 에피소드부터 한국전쟁 이후 가난했던 어린 시절, 가족들과 헤어질 때 슬펐던 장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등…, 회원들은 과거의 자신들을 그대로 연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관객들도 함께 울었다. 간호사로 일하며 문화 차이 때문에 겪었던 갖가지 에피소드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재독 일본여성회 회원들도 함께 무대에 섰다. 1986년부터 일본 남성들의 기생관광 문제를 토론하는 모임으로 시작해 90년대에는 위안부 문제로 연대하며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한·일 역사를 함께 공부한 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재독 한인 여성들과 함께 원전 반대 활동에 나선 일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함께 노래했다.

안차조(73) 재독한국여성모임 대표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며 ‘우리가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독일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회원들이 만나 의견을 나누며 대사를 쓰고 장면을 만들었다며 “그래서 더욱 뿌듯하다”고 했다. 지난 일주일은 아예 행사장에서 합숙했다. 이번 연극의 개사를 담당한 송금희씨는 “재독한국여성모임은 내겐 친정 같은 가족단체”라며 “에너지가 넘쳐서 갈등이 생기지만, 또 가슴을 열고 금방 화해하니까 ‘정 많은 여성모임’이라고 가사를 붙였다”고 했다.

어느덧 세상을 뜨거나 병중에 있는 이들이 잇따라 모임의 회원은 20명 남았다. 조국남 전 대표는 세계 각지에서 온 이들의 단체 70여개를 하나로 묶은 독일이주여성단체연합 ‘다미그라’의 공동대표로 활동한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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