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20일 치기궁 총리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근 국가 신용등급 하락과 관련한 답변을 하고 있다. 로마/ ANSA 연합뉴스
내년도 예산안 적자 규모 확대를 둘러싼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권과 유럽연합(EU) 간의 대립이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3일 이탈리아의 팽창 예산이 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승인을 거부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며 맞서고 있다.
외신들은 유럽연합 집행위가 이탈리아 정부의 예산안을 거부하면서 3주 안에 수정안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이 회원국 예산안을 퇴짜 놓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15일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4%까지 늘린 예산안을 확정해 유럽연합에 제출했다. 이는 애초 전임 정권이 내년까지 이루겠다고 한 목표치(0.8%)의 3배에 해당한다. 유럽연합의 재정적자 허용 한도는 3%인데,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넘진 않았지만 전임 정권의 긴축안에서 크게 후퇴했다.
이탈리아는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 세력인 ‘동맹’이 지난 3월 총선에서 승리한 뒤 6월에 만든 연립정권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감세와 월 780유로(약 101만원)의 빈곤층 기본소득 공약 이행을 위해 확대 예산안을 편성했다. 이탈리아의 정부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의 131%로, 유럽연합 기준(60%)을 2배 이상 초과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그동안에도 이탈리아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우려해왔다. 적자가 더 늘면 2009년 말 유로존을 뒤흔든 ‘그리스 재정 위기’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예산안 수정을 요구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이탈리아가 이를 거부하면 특별 제재를 발동할 수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수정이 불가하다며 맞서고 있다. 이들은 예산을 확대하면 경제 성장률이 높아져 공공 부채 비율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예산안 승인 거부 뒤 “유럽연합이 이탈리아 국민을 공격하고 있다”고 했고, 전날엔 “1㎜도 물러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반 유럽연합 기조를 앞세운 포퓰리즘 정권의 특성상 갈등의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옥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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