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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대체 복무에도 차별 받지 않고 당당히 시민권 누렸죠”

등록 2018-12-10 18:46수정 2018-12-10 20:53

[짬] 주한 스웨덴 대사 할그렌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      김민경 기자
야콥 할그렌 주한 스웨덴 대사. 김민경 기자
그리스, 남아프리카 공화국, 노르웨이, 대만, 덴마크, 독일, 러시아, 세르비아, 스웨덴, 스위스, 아르메니아,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핀란드. 모두 대체복무제를 운영하는 나라들이다. 한국은 올해야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가 시작됐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는 세계적 추세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주한 스웨덴 대사관에서 만난 야콥 할그렌(51) 주한 스웨덴 대사도 18살 때 양심적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어렸을 때 낙하산병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무명용사>(소련과 핀란드 전쟁 소설), <전쟁의 슬픔>(베트남전에 참전한 북베트남 군인이 쓴 책), <서부전선 이상 없다>(1차 세계대전 관련 소설) 같은 소설을 읽고 전쟁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됐습니다. 전쟁 상황에 놓인 저 자신을 그려보니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았어요. 친구들과 토론 끝에 병역을 수행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죠.”

스웨덴은 1901년 남성 징병제를 도입한 직후인 1902년부터 일찍이 종교나 양심에 따른 대체복무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는 “과거부터 소수지만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간 사람들은 늘 있었다. 1902년은 민주화 전이었지만 왕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가 오랫동안 인정됐다고 해서 사회적 편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할그렌 대사도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병역을 거부하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이나 부모님 세대들은 부정적이었어요. 군대에 가고 싶거나 군 복무를 했던 제 또래들도 이해하지 못했죠.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반역자, 겁쟁이, 실패자’로 여겨졌어요.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왜 보호해줘야 하느냐는 말도 나왔고요. 하지만 저는 국방의 의무를 거부한 게 아니라, 대체복무로 제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냉전의 영향이 컸다. 그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던 1985년 유럽 사회에서 소련은 위험한 존재였다.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이 다수였다가, 1960~70년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냉전이 끝나는 1989년까지 유럽 모든 나라들은 군사화돼 있었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는 핫 이슈였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소련의 갈등이 심각했어요. 지금의 한국과 상황과 비슷했어요.”

소설 통해 전쟁 본모습 알고
18살 때 양심적 병역거부 택해
스웨덴 1902년부터 대체복무 허용
청소년지도자로 10개월 복무 수행

97년부터 외무부서 다양한 경험
“전쟁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에 관심”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병역판정검사에서 대체복무를 하겠다고 밝혔다. 대체복무 신청서를 작성한 뒤 군이 임명한 변호사에게서 심사를 받았다. 그는 “18살이었던 나보다 더 나이도 많고, 기성 사회를 대변하는 사람에게서 길고 엄격한 면접을 받았다”고 말했다. 심사를 거쳐 1987~1988년 사이 10개월 동안 와이엠시에이(YMCA) 야외캠프 청소년 지도자로 대체복무를 했다. “초등생을 위한 학교 캠프 강사로 활동했다. 야외 생활, 팀워크 등에 대해 가르치는 건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공립탁아소, 유치원, 소방서, 교도소 근무 등 다양한 대체복무제가 운영되고 있었다. 기간도 군 복무와 같았다.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냉전 종식으로 유럽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걱정과 달리 그는 대체복무를 했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았고, 1997년부터 스웨덴 외무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뒤 보스니아·제네바 스웨덴 대사관, 스웨덴 총사령부, 유엔 등에서 근무하며 평화구축, 중재, 군축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18살 때 대체복무제를 선택한 뒤로 저는 전쟁과 갈등 관련 주제와 함께 일했습니다. 전쟁과 갈등은 내가 잘못한 정치의 불행한 결과로, 전쟁의 끔찍한 결과를 이해하고 그것을 피하는 게 핵심 관심사죠. 대체복무를 선택했지만 군인들을 존경하고, 그들이 전쟁을 어떻게 피하는지 관심이 있어 스웨덴 군대에서도 1년 동안 일 했고요.”

스웨덴은 2010년 징병제를 없앴으나 올해 폐지 전 시행했던 남녀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과 직업 군인 모집에 어려움을 겪은 탓이었다. 18살 아들도 얼마 전 병역판정검사를 받았지만, 할그렌 대사는 “아버지가 내 결정을 존중했듯 아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징병제이지만 모든 국민이 징병 되는 것은 아니라 아들의 군 복무 여부는 아직 결정되진 않았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왜 인권으로 인정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계인권선언 18조를 읽었다. “모든 사람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대체복무제 논의에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훌륭한 민주화 혁명의 전통을 가진 한국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토론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10일 세계인권선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서도 인권선언 18조를 따 “스웨덴에서 대체복무를 하며 (18조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던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대체복무가 허용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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