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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베를린의 아시아 여성들 함성 “성폭력적 전시 중단하라”

등록 2019-01-30 18:04수정 2019-01-30 19:43

신화용씨 주도 ‘아시아 앵그리 걸스 어소시에이션’
‘밧줄 묶은 여성’ 유명 사진작가 아라키 전시 반대 시위
“모델이 ‘감정적 착취’ 폭로한 작가 전시하면 안 돼”
“동아시아 여성들이 느낄 불편함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신화용(맨 앞)씨가 지난달 8일 베를린의 ‘C/0 베를린’ 갤러리 앞에서 ‘아시아 앵그리 걸스 어소시에이션’ 회원들과 함께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품 전시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신화용(맨 앞)씨가 지난달 8일 베를린의 ‘C/0 베를린’ 갤러리 앞에서 ‘아시아 앵그리 걸스 어소시에이션’ 회원들과 함께 아라키 노부요시의 작품 전시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해 미투 논쟁에 휘말린 유명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78)의 작품들이 지난해 말부터 독일 베를린의 사진 갤러리 ‘C/O 베를린’ 에서 전시 중이다. 그의 작품은 벗은 여성을 밧줄로 묶어 표현한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년간 그의 모델이 돼온 가오리는 보수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그의 작품 활동에 헌신했지만, 아라키가 동의도 없이 <가오리 섹스 다이어리>라는 책까지 발간하는 등 자신의 인격을 파괴하면서 착취했다고 주장했다.

전시회 개막일인 지난달 8일 비오는 저녁, 아시아 여성 30여명이 모여 전시 반대 시위를 했다. 시위를 위해 ‘아시아 앵그리 걸스 어소시에이션’(AAGA)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이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전시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또 아라키를 고발한 모델 가오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연대하고 있다. 시위를 조직하고 주도한 신화용(26)씨를 최근 베를린 프렌츠라우어베르크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페미당당’ 회원이었던 신화용씨는 한국에서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진학 준비를 하며 베를린에 머물고 있다.

-어떻게 시위를 조직하게 됐나?

“대여섯 명의 젊은 여성 예술가들이 주축이 됐다. 모두 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분담하고 시위를 조직했다. 페이스북으로 공지했는데,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나와줬다. 다른 단체에서도 나왔다. 최근 뉴욕 전시 때도 시위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2003년 개인전이 있었을 때 ‘안티 아라키전’이 개최되기도 했다.

-전시관 쪽에서 공식 토론을 제안했는데 거절했다고 들었다.

“C/O 베를린 쪽에 전시에 반대하는 항의 메일을 보냈더니 공개토론 자리를 마련해보자는 답이 왔다. 시위 때 낭독한 선언문에 “우리는 거대한 아라키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참가자가 돼 흥행을 도와주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사회 초년생 예술인과 학생들이 베를린에서 가장 유명한 컨템포러리 갤러리와 애초에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하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요구 사항은 전시 취소 혹은 조기 종료였다. 우리는 ‘전시 조기 종료 일정을 언제로 정할지에 대한 토론일 경우에만 응하겠다. 아라키 예술이 가지는 가치나 의의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거절하겠다’고 답했다.

-아라키 작품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라키 작품이 예술적으로 외설이냐 포르노그래피냐를 논하고 싶은 게 아니다. 아라키의 작업하는 태도나 방식을 문제삼는 것이다. 어떤 여성의 실제 삶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나온 결과물을 우리가 예술 작품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이미 그런 폭로가 나왔는데도 전시해야 하는가? 우리에겐 아라키 작품이 스너프 필름, 즉 실제 고문하고 살인하는 영상물과 마찬가지다. 갤러리 쪽에서는 미투 폭로를 한 모델이 들어간 작품은 제외시키긴 했다. 하지만 아라키라는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 자체는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스 폰 트리에, 김기덕 감독 같은 사람들도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있으니 그들의 예술 작품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위는 어땠나.

“시위를 하면서 놀랐다. 사람들이 우호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시위하면 사람들이 공격적이고 적대적이다. 시위 자체를 불온하고 부정적으로 본다. 이번 시위 때는 사람들이 와서 우리들이 말하는 것을 와서 들어보고 유인물도 달라고 했다. 유인물도 100부가 다 나갔다. 물어보고, 궁금해 하고, 우리가 답변을 해주면 “아, 우리가 몰랐다. 이렇게 시위를 해줘서 고맙고, 나는 오늘 이 전시를 안 보겠다”며 돌아간 사람도 많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 문제 대해 잘 몰랐다. 아라키에 대한 미투 폭로 사실이 있었던 것도 모르고, 아시아 여성들이 봤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어떤 게 문제가 될 수 있는가?

“가령 한국에서는 ‘아프리카의 굶는 어린이들을 돕자’는 공익광고 이미지에 대한 경각심이 적다. 흑인이라는 이미지가 기아에 시달리고, 고통받고, 불쌍하고, 굶는 이미지로 편성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아라키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관람객들이 피사체의 대상과 같은 그룹에 속한 인종인 동아시아 여성들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낄 거라는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
-아라키 작품을 접해봤나?

“아라키 작품 도록을 갖고 있다. 그땐 남성주의적 시각으로 공부하고 세상을 배웠으니까, 대학 초년 때는 그런 게 예술이고 파격인 줄 알았다.”

-어떻게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2011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직 학내에 여성주의적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90%가 여성이고 남성주의적 분위기가 덜해 자연스럽게 체득을 했다. 그런데도 페미니즘이 감춰야 되는 것처럼 여겨야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닐 걸’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가 됐나?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의하기 시작한 것은 메갈리아가 나왔을 때부터다. 당시엔 어느 순간 인터넷 포털사이트 뉴스의 댓글을 보지 않기 시작했다. 여자 욕 일색이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메갈리아에서 보통 내가 듣고 자랐던 이야기들을 남자들에게 적용하니까 말이 되지 않았다. 그때 ‘아, 내가 남녀가 차별받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를 처음 자각하게 됐다. 내 또래 친구들은 메갈리아 때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페미당당 회원들은 서울대에서 만난 친구들로 주로 구성됐다. 만나서 같이 놀던 친구들인데, 강남역 살인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페미당당을 결성했다.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쉬고 있지만, 그동안 폴란드 및 아일랜드와 연대해 낙태죄 폐지 시위를 했고, 페미니즘 내용으로 다양한 세미나도 열었다. 또 페미 파티를 진행했고, 박근혜 탄핵 시위 때 페미존도 만들었다. 페미당당이라는 깃발을 들고 젊은 여성 대여섯 명이 다니니까 공격이 많이 들어왔다. 일부러 치고 지나가고, 여성들이 대의를 추구하는 자리에 나와서도 불편함을 겪는다는 생각에 다른 여성단체들과 연대해서 페미 존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디제이덕 풍자 노래의 여성 혐오 표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주최 쪽과 합의를 봐 무대 공연을 취소했다. 하지만 그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북한의 사주를 받았다. 박근혜 탄핵을 방해하려고 온 세력’이라는 수천 개의 욕 댓글이 달렸다. 우리의 문제 제기가 잘못됐나, 스스로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그때 시위에 나가면 직접 공격도 많이 들어오고 싸움도 많이 있었다. 시위하러 나가면 아저씨들이 ‘예쁜 아가씨들이 고생이 많네. 시위도 하고 대단하다’고 했다. 그렇게 던지는 말에도 너무 힘들었다. 우리를 동등한 시민으로 봐주는 게 아니라, 자기 아래로 보는 거 아닌가. 그분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수긍하지 않고, 감정 소모가 매우 많았다. 그때 그 피해 경험을 곱씹게 되는 게 힘들어서 시위 뒤풀이도 못했다. 악몽이었다.

-계속 아라키 전시 반대 운동을 진행할 건가?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미술 계통에 있으니까 릴레이식으로 포스터를 만들어 전시장 주변에 붙이기, 전시 반대 문구를 적은 티셔츠를 단체로 입고 가 항의하는 단체 관람 시위도 생각 중이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사진 ‘아시아 앵그리 걸스 어소시에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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