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의 대표인 루이지 디마이오 부총리(오른쪽 네번째)가 5일 프랑스의 노란조끼운동 지도부와 만나 정치적 공조를 논의한 뒤 트위터에 그 사실을 공개했다. 디마이오 트위터 계정 갈무리
프랑스 시민들의 ‘노란조끼’ 시위를 놓고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최악의 외교 분쟁으로 빠져들고 있다. 루이지 디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이 프랑스 정치와 사회를 흔드는 노란조끼운동 지도부를 직접 만나 연대를 논의하며 노골적 내정 간섭 행태를 보이자, 프랑스 정부가 강력히 반발하며 이탈리아 주재 대사를 전격 소환했다.
디마이오 부총리는 5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노란조끼 운동 지도부를 만나 지지 의사를 밝히고, 5월 유럽의회 선거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10월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노란조끼 시위는 수개월째 이어지며 반정부 운동 성격이 강화됐으며, 최근 정치세력화를 선언했다. 디마이오 부총리는 트위터에 “우리는 프랑스에서 도약하는 노란조끼 운동 지도부와 유럽의회 의원 후보들을 만났다. 변화의 바람이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의 산맥) 알프스를 가로지르고 있다”고 썼다.
발끈한 프랑스 정부는 7일 이탈리아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프랑스가 이탈리아 주재 대사를 불러들인 것은 양국이 적국이었던 2차대전 이후 처음이다. 프랑스 외교부는 성명에서 “지난 몇달간 프랑스는 근거 없는 공격과 무례한 언사의 표적이 돼왔다”, “가장 최근의 (내정) 개입은 용납할 수 없는 도발로, 우방국의 민주적 선택에 대한 존중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의견이 다른 것과 선거를 겨냥해 (양국의) 관계를 비트는 건 다른 일”이라고도 했다. 디마이오 부총리가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이웃 국가 서민들의 자국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다.
7일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대사관에 프랑스 국기와 유럽연합 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날 이탈리아 정부의 “용납할 수 없는 내정 간섭”을 문제 삼아 이탈리아 주재 대사를 전격 소환했다. 로마/AFP 연합뉴스
디마이오 부총리는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의 대표로, 지난해 극우 정치세력 ‘동맹’과 연정을 구성해 2차대전 이래 서유럽 최초의 극우-포퓰리즘 정권을 출범시켰다. <로이터> 통신은 디마이오(32) 부총리가 에마뉘엘 마크롱(41) 프랑스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극우 정치의 대표 인물로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도 지난달 “국민의 뜻에 어긋난 통치를 하는 대통령에게 저항하는 선량한 시민들을 지지한다”며, 마크롱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렸다.
프랑스 정부의 비난에 디마이오 부총리는 “프랑스 시민들은 우리 친구이자 동맹”이라며 “내겐 프랑스 인민을 대표하는 다른 정치세력과 대화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에도 유럽의 난민 위기가 유럽 열강들의 아프리카 착취에서 비롯했다며 프랑스의 대외 정책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마찰을 빚었다.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하는 난민들의 관문이 되는 이탈리아는 난민 정책을 놓고도 프랑스 등과 다퉈왔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상황이 곧 말끔하게 진정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양국 간 누적된 앙금이 금세 씻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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