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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반난민 정책 불만” 51명 탄 이탈리아 스쿨버스 납치·방화

등록 2019-03-21 11:56수정 2019-03-21 19:41

세네갈 출신 기사 “지중해서 딸 셋 잃었다”
강경 반난민 정책 포퓰리즘 정권 비판
학생들은 무사히 구출, 기사는 현장서 체포
난민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탈리아 버스 기사가 20일 학생들이 탄 스쿨버스에 불을 붙여 버스가 전소됐다. AFP 연합뉴스
난민 정책에 불만을 품은 이탈리아 버스 기사가 20일 학생들이 탄 스쿨버스에 불을 붙여 버스가 전소됐다. AFP 연합뉴스
뉴질랜드에서 50명이 희생된 반이민 혐오 범죄의 충격이 여전한 가운데 이탈리아에서 반난민 정책에 복수한다는 명분으로 어린 학생 51명이 탄 버스를 전소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버스 안에 있던 한 학생의 기지가 없었다면 대형 참사가 될 뻔했다.

사건은 20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 크레마의 체육관에서 활동을 마친 12살 안팎 중학생 51명과 인솔자 3명을 태운 버스가 학교가 아닌 밀라노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시작됐다.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으로 계속 스쿨버스를 몰아온 운전사 오세이노 시(47)가 갑자기 돌변했다. 그는 휘발유가 담긴 통 2개와 라이터로 학생들을 위협하면서 전화기를 압수했다. 미리 준비한 케이블로 인솔자들에게 학생들 손을 묶게 했다. 말을 안 들으면 불을 지르겠다며 “모두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천만다행하게도 한 학생이 느슨한 결박을 풀고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로 부모에게 상황을 알렸다. 출동한 경찰이 차량과 바리케이드로 버스를 막아서자 범인은 차에 기름을 뿌린 뒤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경찰이 창을 깨고 학생들을 구조하면서 40여분간의 아찔한 납치극이 끝났다. 20여명이 연기 흡입, 타박상, 정신적 충격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안사> 통신 등 현지 언론은 붙잡힌 운전사 시가 이탈리아 정부의 반난민 정책을 범행 동기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지중해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멈춰라. 나는 학살을 할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한 학생은 그가 버스 안에서 “이탈리아에 오려다 바다에 빠져 숨진 세 딸에 대한 복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죽어가고 있으며, (이탈리아 부총리) 디마이오와 살비니 탓”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검찰은 범인이 이슬람 테러 세력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범행 전 유튜브에 올린 메시지에서 전세계가 자신의 얘기를 듣게 하려고 행동에 나선다며 “아프리카여 일어나라”고 했다. 학생들을 협박하며 한 얘기와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 등을 종합하면, 범인은 난민선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딸들을 잃었고, 지난해 출범한 포퓰리즘 정부의 반난민 정책에 불만을 품고 일을 벌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동료들에게도 반난민 정책에 대한 불만을 얘기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범인은 2004년에 이탈리아 시민권을 얻고 계속 스쿨버스 기사로 일해왔다. 검찰은 그에게 음주운전과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 전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탈리아 여성과도 결혼했으나 두 자녀를 낳은 뒤 이혼했다. 그가 주장한 게 모두 사실인지, 평소 태우고 다니던 학생들을 한꺼번에 살해하려 한 동기가 순전히 반난민 정책에 대한 불만인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유럽에 들어오는 주요 관문인 이탈리아는 지난해 포퓰리즘 정부 출범 뒤 반난민 정책을 강하게 펴고 있다. 2014년 이후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에 들어온 난민은 65만명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 대한 불만을 이용해 권력을 잡은 포퓰리즘 정부는 난민 시설을 폐쇄하고 비정부기구가 운용하는 난민선의 입항을 막아왔다.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선 후 이탈리아로 들어온 난민 수는 80%가량 줄었다. 지난해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난민은 2275명에 달한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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