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소련 구성국들에 대한 가스 수출가격
우크라·그루지아 등에 “서유럽과 똑같이” 가격인상
러-유럽 연결관 통과 우크라 “통관료 울릴 것” 반발
자원민족주의를 강화해 온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천연가스를 대외관계에서의 무기로 삼아갈 태세다.
러시아는 최근 친서방으로 기울어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몰도바, 발트3국 등 ‘에너지 위성국’들에 대해 옛소련 시절 수출우대조처를 폐지하고, 내년 1월1일부터 서유럽과 동일한 시장가격을 요구하고 나섰다. 50%에서 많게는 3배에 달하는 가격인상이다.(?5s표)
러시아 정부는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19일 친러시아 성향의 벨로루시에게는 내년에도 지금처럼 1000㎥당 46달러에 공급키로 한 것으로 볼 때, 가격 인상은 ‘형제국’ 위치를 벗어난 나라들에 대한 ‘대가’의 성격이 짙다.
러시아는 지난 여름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과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비우호국에 대해서는 가스공급 특혜를 철회한다는 입장을 천명했으며, 지난달말 가격인상을 통고해 이를 가시화했다.
19일 러시아의 미하일 프라드코프 총리와 우크라이나의 유리 예하누로프 총리는 모스크바에서 1달동안 끌어온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시도했으나 끝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러시아가 1000㎥당 현행 50달러에서 160달러로 인상을 요구한 데 대해, 우크라이나는 5년간 단계적 인상을 고수했다. 한때 우크라이나는 자국을 관통하는 가스관의 통관료를 따라서 4배 인상하고, 흑해함대의 기지사용료(9700만달러)를 크게 인상하겠다고 버텨 러시아를 격분시켰다. 러시아는 현행 시장가격인 220~230달러까지 추가인상하겠다면서, 가격인상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1월1일부터 가스수출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강하게 버티는 이유는 서유럽이 사용하는 가스의 50%가 러시아산이고 이 가운데 85%가 우크라이나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발트해 밑을 통해 독일로 직접 연결되는 북유럽가스관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도 이런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는 가스프롬이 우크라이나 쪽으로 보내는 가스의 18%를 통관료 명목으로 받아 자국 사용량의 30%를 충당해 왔다.
대부분의 에너지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상황에선 1년에 20억~30억달러의 대금을 새로 지불해야 할 형편이다. 가스값 인상은 국내총생산의 45%와 30%를 각각 차지하는 철강 및 화학 산업에 큰 타격이다. 이는 지난해 12%였던 경제성장률이 올해 3%로 위축된 상황에서, 내년 3월 총선을 앞둔 빅토르 유셴코 정부의 정치기반을 뿌리째 뒤흔들 수도 있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자국 통과 가스관과 송유관 등을 내세워 버티는 반면 ‘장미 혁명’의 그루지야, 유럽연합과 나토에 합류한 발트3국, 최근 친서방 노선을 강화하고 있는 몰도바 등은 러시아의 압력에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독일 등 서유럽으로 가는 가스가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어떤 식으로든 타협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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