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각 위기 루카셴코, 푸틴에게 지원 요청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6선 연임에 항의하는 벨라루스 시민들이 16일 수도 민스크에서 1918년 벨라루스인민공화국 시절 사용했던 ‘백-적-백 깃발’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민스크/EPA 연합뉴스
푸틴 “집단안보조약 따라 도울 준비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15, 16일 두차례 전화 통화를 하고 벨라루스에 반정부 시위 사태 대처 방안을 논의했다고 벨라루스 국영 <벨타> 통신이 보도했다. 두 나라 정상 간 통화는 지난 15일 루카셴코가 먼저 전화를 걸어 러시아의 지원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푸틴은 16일 통화에서 루카셴코에게 “필요하다면 집단안보조약에 따라 벨라루스를 도울 준비가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크렘린도 두 나라 지도자가 이날 통화에서 “벨라루스공화국이 외부로부터 받는 압력을 고려하며 벨라루스의 상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앞 오른쪽)이 지난해 8월 흑해 연안 크림반도의 항구도시 세바스토폴에서 열린 국제 바이크쇼에서 러시아산 오토바이를 몰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실효 지배를 과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친러 전선 방어…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재현 우려 루카셴코가 대선 승리를 고집하며 푸틴에게 지원 요청까지 하면서, 2014년 우크라이나 위기가 재현될까 봐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시 친러 노선을 표방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연합 가입 연기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밀려 러시아로 망명한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전격적으로 개입해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러시아계 주민이 사는 동부 우크라이나의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내전 지원에 나섰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벨라루스 반정부 시위에 개입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건, 러시아 안보에 사활적인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와 가장 가까운 국가다. 게다가 러시아의 발트해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 사이에 있는 수바우키 회랑은 서방과 러시아의 역사적 대결 요충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접경지대이기도 한데, 벨라루스가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이탈해 서방 쪽으로 기운다면,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뿐만 아니라 발트해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된다. 이에 따라 나토와 러시아는 유사시 수바우키 회랑 장악을 위한 연합훈련을 수시로 벌여왔다. 이런 안보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더라도, 당장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외신들은 본다. 현재 벨라루스에서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대가 ‘반러시아’를 표방한 우크라이나 사태와는 달리 아직까지는 ‘반루카셴코’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친러 노선을 담보하던 루카셴코 정권이 무너진다면 푸틴의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 이상으로 벨라루스에 개입할 이유가 충분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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