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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독일 공공장소에 첫 소녀상 건립 “성폭력 피해자들 용기 상징”

등록 2020-09-29 14:38수정 2020-09-30 02:42

독일, 한인 시민단체 연대 결실
야지디 여성 “일본군 피해자만의 상징 아니다”
일본 관방 “철거 위해 관계자와 접촉할 것”
2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때 야지디족 인권운동가인 누지안 귀나이가 소녀상의 손을 잡고 있다.
2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때 야지디족 인권운동가인 누지안 귀나이가 소녀상의 손을 잡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와 정의에 대한 상징이다. 그 싸움은 오늘 갇혀 있는 3000명 야지디족 여성들에 대한 지원으로 이어져야 한다." (베레나 프랑케, '하나 된 세상을 위한 재분배재단' 여성분과 대표)

"소녀상이 세계 도처에 세워져야 하는 이유는 콩고,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미얀마에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전쟁 성폭력에 눈을 돌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인자 에쉐바흐, 전 라벤스부르크시 나치강제수용소 기념관장)

2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서 세계 전쟁 성폭력 피해 지역이 하나하나 호명됐다. 건립을 주도한 독-한 단체 ‘코리아협의회’와 함께 소녀상 건립에 힘을 보탠 ‘베를린 일본 여성 모임’ 회원들, 독일 지역 문화운동 단체, 수단 여성인권단체, 함흥지역 장애인들을 후원하는 ‘추잠멘 함흥’ 등 다양한 여성 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제막식 자리를 빌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 성폭력들을 폭로하고 해결을 요구했다.

이날 가장 많이 호명된 이들은 이라크 북부 소수민족 야지디족 여성들이다. 야지디족 인권운동가인 누지안 귀나이(40)는 “한국에서 온 소녀상은 야지디 여성들의 모습 그대로”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베를린 야지디 여성협회를 만들기도 한 귀나이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2014년 이슬람국가(IS)의 야지디족 인종 말살 공격 뒤 많은 여자들이 성폭력 희생자가 됐다. 아직 3000명은 실종상태다. 이들 대부분은 여자”라고 실태를 전했다. 귀나이는 “여성들은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 소녀상은 과거 아시아 지역 일본군에 의한 피해자 상징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연대로 위험에 처한 다른 여성을 구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2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때 독일 여성단체 ‘코라쥬’(용기) 회원들이 소녀상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시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때 독일 여성단체 ‘코라쥬’(용기) 회원들이 소녀상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소녀상 건립 대 철거 싸움은 늘 진행형이다. 비젠트시에 세워진 ‘유럽1호’ 소녀상은 비문이 철거되고 라벤스브뤼크 기념관 작은 소녀상이 철거되는 등 소녀상 건립 때마다 일본 정부의 항의가 거셌다. 그럼에도 이번에 다시 베를린시 미테구 공공 부지에 소녀상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지역단체와 여성단체들이 연대의 뜻에 공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독일에서 공공장소 소녀상 건립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연대사를 발표한 ‘메디카 몬디알레’의 정치, 홍보담당 사라 프렘베르크(40)는 왜 한국의 소녀상이 독일에 세워져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가주의, 여성의 신체에 대한 통제, 인종청소 등 형태를 달리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 성폭력의 한 예다. 소녀상은 문화적 기념물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쟁 성 피해에 대한 증거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메디카 몬디알레’는 성폭력피해자들에 대한 의료, 심리, 법 지원을 위해 1993년 독일 쾰른에 설립된 여성인권단체다. 사라 프렘베르크는 또 “한국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성노예로 끌려갔다. 독일은 전범국가로서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상기하기 위해 소녀상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베를린 소녀상 건립을 위해 일본군위안부문제대책협의회와 코리아협의회에서 힘을 보탠 일본인들도 있었다. 코리아협의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이시야마 유미코(46)는 “처음엔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독일에선 구체적으로 나치에 대해 가르치고 수많은 영상과 전쟁유산으로 역사를 상기시킨다. 일본도 주도적으로 역사를 기억하는 일에 나설 수 있지 않았을까. 일본에 살고 있을 땐 이런 생각을 할 기회조차도 갖지 못했다는 것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이번 베를린 소녀상도 철거를 요구할 생각을 나타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2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소녀상에 대해서도 “극히 유감이다. 철거를 위해 여러 관계자와 접촉해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베를린/글·사진 남은주 통신원 nameunjoo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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