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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1000년 숙적’ 유럽과 중동…살라딘의 저주는 언제나 풀릴까

등록 2020-11-08 08:53수정 2020-11-08 08:59

[토요판] 뉴스분석 왜
두 문명의 역사적 원한은 어떻게 재생산됐나

무슬림 테러에 신음하는 유럽대륙
‘순교형 단독 테러’ 표준화 추세
근거지 상실한 최악 테러집단 IS
‘버추얼 칼리프국’으로 부활 노려

서구 세력의 ‘중동 재탈환’ 100년
천년 전 십자군까지 불러내는 언행
극단주의는 역사적 원한 관계 이용
상처 덧내지 않는 성숙한 의식 긴요
5일 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시민들이 사흘 전 이슬람국가(IS) 동조자의 테러로 숨진 희생자 4명을 추모하고 있다. 촛불을 든 무슬림 여성들도 눈에 띈다. 빈/AFP 연합뉴스
5일 밤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시민들이 사흘 전 이슬람국가(IS) 동조자의 테러로 숨진 희생자 4명을 추모하고 있다. 촛불을 든 무슬림 여성들도 눈에 띈다. 빈/AFP 연합뉴스

▶ 얼마간 잠잠한 듯하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유럽에서 잇따르고 있다. 파리, 니스, 빈에서 무고한 이들이 공격자의 시야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다. 어제까지 이웃이던 사람이 흉포한 살인자로 돌변한다. 책임은 당연히 공격자들에게 있지만, 해법을 찾는 과정에서 이 광범위하고 심각한 갈등의 배경과 뿌리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현대 유럽-중동의 역사적 원한 관계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증폭됐는지, 테러리즘은 이를 먹이로 어떻게 ‘진화’의 길을 걷는지 짚어본다.

“살라딘이여, 우리가 돌아왔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0년 8월 프랑스 장군 앙리 구로는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점령한 직후 살라딘의 묘를 찾아 이렇게 외쳤다. 1차대전에서 이긴 연합국 쪽이 ‘유럽의 병자’ 오스만튀르크의 영역이었던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전리품으로 챙길 때였다. 구로가 호기롭게 부른 무덤의 주인은 그때로부터 700년도 더 전에 영면에 들어간 이슬람의 영웅이다. 제3차 십자군에 성전(지하드)을 선포하고 그들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을 무너뜨린 뒤 아이유브왕조를 세운 사람이다.

구로의 한마디가 기억되는 이유는 유럽과 중동,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적 라이벌 관계를 응축했기 때문이다. 1095년 성지(예루살렘) 회복을 위한 제1차 십자군운동의 깃발이 올라간 이래 자신들이 또 승리했다는 포효였던 셈이다. 산업화 시대의 황금인 석유 탓에 식민지로 전락한 중동은 2차대전 전후로 독립을 성취했지만 서구의 개입은 이어졌다. 이슬람 입장에서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은 이교도 예루살렘왕국의 재림이었다.

끝 모를 테러…승복 못하는 살라딘의 후예

100년 전 구로의 기대와는 달리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몇 차례의 중동전쟁, 미국 등 서구의 침공, 저항과 테러, 서구에 대한 지독한 반감은 1천년 전 십자군의 첫출발 이래 적대의 뿌리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싸움이 끝나기는커녕 전장이 유럽 본토로 옮겨가는 형국이다. 최근 잇따른 테러는 지난달 16일 표현의 자유 주제 수업에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사용한 프랑스 교사가 무슬림 청년에게 참수당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됐다. 희생자는 2015년 무함마드 풍자 만평을 실었다는 이유로 극단주의자들한테 직원 12명이 살해당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을 보여줬다가 화를 당했다. 이번 사건은 1989년 작품 <악마의 시>로 무함마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한테 ‘사형 선고’를 받은 살만 루슈디 사건도 닮았다. 프랑스 교사 참수 사건에 고무된 것으로 보이는 테러도 잇따랐다. 지난달 29일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의 교회에서 튀니지 출신 21살 청년이 흉기로 3명을 살해했다. 이달 2일에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무슬림의 총격으로 4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쳤다.

무슬림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보이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달 29일 극우단체 회원으로 추정되는 30대가 프랑스 아비뇽에서 권총을 휘두르며 북아프리카 출신 상점 점원을 위협하다 경찰에 사살당했다. 그는 신나치들이 입는 재킷에 “유럽을 지키자”는 문구를 썼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코로나19에 신음하는 유럽은 되살아난 테러의 공포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제3차 십자군전쟁에서 각각 이슬람과 기독교 진영을 이끈 살라딘(왼쪽)과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
제3차 십자군전쟁에서 각각 이슬람과 기독교 진영을 이끈 살라딘(왼쪽)과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

포스트 IS ‘1인 군대’…테러의 진화

유럽에서 꼬리를 무는 무슬림 테러는 △자생적이고 △지도자가 따로 없으며 △인터넷이 매개체라는 3대 특징이 있다. 총기와 폭탄이라는 전통적 공격 수단은 물러나고 흉기나 자동차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도구가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는 최근 현상일 뿐이다. 무슨 필요와 변화가 있었을까?

이슬람과 테러를 쉽게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지만, 7세기에 창시된 장구한 역사의 종교에 ‘테러’라는 오명이 덧씌워진 것은 불과 30~40년 된 일이다. 20세기 이래 서구에 대한 중동의 저항은 주체라는 면에서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독립 및 이스라엘과의 분쟁에서 국가 성립 주도 세력이나 국가가 전면에 나선 시기다. 둘째는 5개국이 덤비고도 이스라엘을 제압하지 못한 뒤 타협 기조가 형성되자 테러집단을 비롯한 조직들이 나선 국면이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무자헤딘(이슬람 성전 전사)이 발흥해 알카에다 등 본격적인 테러조직으로 이어졌다. 1960~70년대에도 중동에 테러는 있었지만 주로 종교적 맥락 없이 아랍 민족주의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진영에서 이용한 투쟁 방식이었다. 미국의 테러 전문가 브루스 호프먼은 1980년에 64개 테러조직 중 종교적 성격의 조직은 2개뿐이었는데 1995년에는 전체 56개 중 26개로 늘었다고 집계했다. 자살테러도 1990년대 이후 퍼진 현상이다.

2015년을 기점으로 앞서 언급한 3대 특징을 지닌 신개념 테러라는 세번째 국면이 열렸다. 그해 11월 파리에서 이슬람국가(IS)가 연쇄 테러로 130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사건 뒤로 유럽 밖 조직이 직접 기획한 대형 테러는 사라졌다. 대신 ‘유러피언 지하디스트’가 단독으로, 또는 몇몇이 공모해 거리의 민간인들을 공공연히 해치는 게 유행이 됐다. 이들은 이라크·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에 가담했다 돌아온 사람들, 아예 중동에 가보지도 않은 이들로 나뉜다. 유러피언 지하디스트는 대개 20~30대 남성이며, 소속국 평균보다 학력은 낮고 실업률은 높다. 경제적·종교적·문화적으로 주변화된 젊은이들이 극단주의 선동에 취약하다는 게 통념이다.

‘외로운 늑대’는 이런 구조뿐 아니라 테러집단들의 전술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변화의 원조는 이슬람국가의 선배인 알카에다다. 알카에다 이론가 아부 무사브 수리는 2001년 개시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오사마 빈라덴을 정점으로 한 지도부가 취약한 상태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2004년 <글로벌 이슬람 저항의 요구>라는 1600쪽짜리 책에서 알카에다를 탈중앙집중적이고 지도자 없이도 존속할 수 있는 운동으로 개편하자고 제안했다. 지역적 봉기 또는 경험 많은 전사들이 소규모 또는 개인 단위로 싸우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1인 군대’ 독트린이다. 알카에다는 애초 이를 거부했으나 나중에는 프랜차이즈 형식의 조직을 승인하고 자생적 테러를 부추기는 전술을 채택했다. 과격파들의 ‘인터넷 스타’였던 이슬람 성직자 안와르 아울라끼는 영어 매체 <인스파이어>를 통해 ‘1인 군대’ 독트린을 정력적으로 전파했다.

이슬람국가는 이를 더욱 안착시켰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테러조직들이 이슬람국가에 충성을 맹세했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유럽의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이슬람국가의 요구에 호응했다. 그 결과가 느닷없이 도처에서 발생하는 흉기 테러다. 이는 미군 등의 공격으로 현실 공간에서 사멸의 길로 접어든 이슬람국가의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올해 4월 파리에서 경찰 오토바이 2대를 승용차로 들이받아 경찰관들에게 중상을 입힌 테러범은 “이슬람국가를 위해 한 행동”이라고 했다. 이달 2일 빈의 밤거리를 뒤흔든 총격범은 이슬람국가에 가담하려다 적발돼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칼리프국(무함마드의 후계자가 다스린다는 신정일치 국가) 건설을 선언했던 이슬람국가는 이제 ‘마음속 칼리프국’, ‘버추얼 칼리프국’으로 변신해 테러리스트들을 이끈다.

그를 무덤으로 되돌려보내려면…

역사적 사건은 현실적 필요로 기억되기도, 잊히기도, 부활하기도 한다. 중동인들은 지금도 서유럽인들을 프랑크인이라고 부른다. 게르만족 지파로 십자군전쟁 선봉에 선 프랑크족에 대한 원한이 담긴 말이다. 그런데 ‘십자군의 추억’이 부활하도록 먼저 자극한 것은 서구 쪽이다. 프랑스 장군 구로가 요란한 개선가로 무덤 속 살라딘을 깨우기 22년 전인 1898년에도 빌헬름 2세 독일 황제가 살라딘 묘를 찾아 현지 민심을 자극했다. 영국 잡지 <펀치>는 1차대전 말기에 영국군의 예루살렘 입성을 맞아 사자심왕 리처드가 이 도시를 굽어보는 모습의 만평을 실었다. ‘최후의 십자군’이라는 제목에 “내 꿈을 마침내 이뤘다”는 리처드의 말도 붙였다. 잉글랜드의 사자심왕 리처드는 제3차 십자군 때 살라딘과 숙명의 대결을 벌인 ‘십자군 영웅’이다. 이 만평 내용도 중동 재정복이 부른 만용이다.

이슬람 학자들은 이런 사건들 전만 해도 무슬림들은 십자군에 대한 기억이 짙지 않았다고 말한다. 오히려 13세기에 대규모 도륙을 자행한 몽골을 이슬람 세계가 뒤처지게 만든 원흉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했다고 한다. 그런데 서구가 쇄도해오며 십자군 운운하니 표적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극단주의자들은 그 틈을 파고들어 ‘천년 숙적’에 대한 증오를 한껏 퍼뜨릴 수 있었다. 9·11테러 주범 빈라덴도 십자군에 대한 투쟁을 부르짖었다. 이런 마당에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십자군전쟁으로 부르며 맞장구를 친 것은 중대한 실언이었다. 임기 초에 이슬람권 국가 출신자들의 입국을 금지시켜 파란을 일으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한 것을 두고도 극단주의의 저변 확대에 기여한다는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최근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언급하며 “무슬림은 프랑스인 수백만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한 것도 끔찍한 망언이다. 극단주의자뿐 아니라 부주의한 지도자들이 끊임없이 증오를 부추긴다.

이제 서구가 상대하는 대상은 이슬람권 국가에서 조직으로, 조직에서 다시 개인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가 제압됐고, 이슬람국가는 근거지에서 축출됐으며, 알카에다는 쇠약해졌다. 테러와의 전쟁이 승기를 잡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서구인들은 안방에서 많은 ‘1인 군대’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 이슬람국가 전투원 출신을 비롯한 적극적 지하드 동조자가 유럽 내에 5만명이 있다는 추산도 나왔다. 유럽연합(EU) 형사기구인 유로폴은 ‘2020 테러 상황·동향 보고서’에서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국가의 선동은 차단 노력 덕에 위축됐다면서도 암호 기술을 쓰는 다른 소셜미디어들에서 개인적 지하드 선동이 활발해졌다고 밝혔다.

무슬림들의 불만과 봉기의 원인으로는 전통적으로 중동의 전제정치, 부패, 서구의 압박 및 서구 문화에 대한 반감이 꼽혀왔다. 나아가 종교 근본주의는 이슬람에서 멀어진 게 만악의 근원이므로 ‘근본’으로의 회귀만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슬람국가가 창설된 배경이다. 이들도 역사적 패배 의식과 모멸감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이슬람국가는 칼리프국 성립을 선포했는데, 이슬람 초기의 칼리프국은 중동을 비롯한 지중해 주변을 제패했다. 이슬람국가는 십자군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퇴행적 열망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이 말은 영국 출신 중동사가 버나드 루이스가 9·11테러 직후 펴낸 책 제목이기도 하다. 루이스는 서구와 중동의 심각한 갈등의 근저에는 옛 영광은 사라지고 서구 문명의 문하생으로 전락한 무슬림들의 “만신창이가 된 자존심”이 있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가 급성장해 자신들은 2류도 못 되는 3류 문하생으로 추락했다는 자의식이 무슬림들의 자존심을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진단했다. 루이스는 증오, 자기연민, 분노에서 벗어나라고 무슬림들에게 충고했다. ‘당신들 안에서 해법을 찾고 문제를 극복하시오’라는 조언이다. 그러나 서구가 역사적 피해의식과 상처의 치유를 돕기는커녕 그 상처를 자기과시에 이용한다면 화해의 날은 더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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