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경제위기와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비교
유가·원자재값 뛰고 집값 폭락 ‘3중고’
‘오일쇼크·IT 거품붕괴’보다 충격파 커
‘오일쇼크·IT 거품붕괴’보다 충격파 커
“이번 위기는 과거에 볼 수 있었던 주기적 슬럼프(침체)를 넘어설 것이다.”
〈에이피〉(AP) 통신은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에 대해, 미국 경제전문가들의 말을 따 이렇게 보도했다. 이전의 위기와는 달리, 훨씬 심각하고 복합적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2001년 ‘정보통신(IT) 거품’ 붕괴로 인한 침체는 지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닷컴들의 줄도산으로 나스닥 주가는 반토막이 났고, 경제성장률은 0.8%에 그쳤다. 그럼에도 당시 부동산 가격은 8.5% 올랐고, 유가도 배럴당 26달러로 안정세를 보였다. 정보기술 분야 이외에선 경제 불안이 크지 않았다. 고용 사정은 지금이 훨씬 나쁘다. 거품 붕괴 이후 없어진 월가의 일자리는 모두 3만9800개였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지난 9개월 동안에만 3만4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헤드헌팅 업체인 바탈리아 윈슨톤 인터내셔널의 조 베넷 연구원은 24일 〈블룸버그〉에 “몇년 안에 1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1973~75년 기름값이 세 배가 뛴 ‘1차 오일쇼크’ 때보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찾을 수 있다. 데이비드 로젠버그 메릴린치 북아메리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당시의 충격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당시엔 치솟는 기름값만 문제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원자재와 곡물값도 함께 뛰는데다, 개인 자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집값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그때와 달리 개인 소비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2%에 그친 91년 침체기보다 악화될 조짐이 뚜렷해 보인다. 91년 주택 가격은 1.5% 하락에 그쳤지만, 지난해 하락폭은 4.6%에 이른다. 미국 주요 도시 20곳의 집값은 지난 1년 사이 10% 이상 떨어졌다. 개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가늠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율은 91년 62%에서 지난해 말 97.6%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개인 저축률은 7.3%에서 0.5%로 추락했다. 쓸 돈은 없고, 빚은 불어날 대로 불어난 셈이다. 개인 소비와 주택건설 투자가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6%에 이른다. 엘지경제연구원은 최근 ‘2008년 국내외 경제 전망’에서 “이번 경기침체는 과거 침체기와 달리, 부동산 가격 하락과 유가 상승이 겹쳤고, 구조적으로도 가계의 재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탓에 가벼운 소비 조정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세계 GDP의 25%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가 이번 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은 드물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비즈니스스쿨 교수(경제학)는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글에서 “고통스럽고 오래가는 폐렴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진단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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