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국제경제

‘통제받지 않는 자본’이 ‘시장 불안정’ 키웠다

등록 2008-09-23 14:36

[시장신화의 몰락] ① 전환점에 선 신자유주의
과도한 금융자본 팽창, 과잉 유동성 위기 초래
규제 완화 통한 ‘작은 정부 큰 시장’ 제동 걸려
미국발 금융위기는 시장만능주의 신화가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규제 완화를 내세우던 시장주의자들과 금융자본은 몰락의 위기에 몰리자 국가의 지원과 개입을 되레 앞장서 주장하고 있다. 세 차례에 걸쳐 국가와 시장, 금융과 실물의 바람직한 관계상을 찾아보고, 미국발 금융위기를 교훈 삼아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히 할 방안을 찾아본다.

“자본주의가 역사의 전환점에 섰다.” 미국 월가를 대변하는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의미심장한 화두를 꺼냈다. 30~40년 주기로 이뤄져온 자본주의의 큰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유럽의 언론들은 이번 위기가 명백한 ‘시장의 실패’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정부 개입 최소화와 시장 주도의 경제를 부르짖는 신자유주의의 위기라고 설명한다. 일부에선 ‘국가의 귀환’이란 표현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시장의 후퇴와 국가의 등장이 경제시스템의 지형을 어디까지 변화시킬지는 알 수 없다. 20세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는 시장의 실패와 정부의 실패를 반복해 왔지만, 지금 전세계 금융시장은 이미 하나로 통합된 상황이다. 과거와 같은 정부 주도 시스템으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다. 금융위기가 시장과 국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라는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시장과 국가는 각각 실패를 반복하면서 서로 주도권을 내주며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100년 전쟁이라고 할 만한 대립과 갈등의 역사다. 자유방임적인 시장경제를 신봉하던 1940년대 이전의 자본주의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치명상을 입고 ‘시장의 실패’로 귀결됐다. 자유방임은 시장의 독점을 불러왔고,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대다수 국민은 무지와 가난 속에서 건전한 소비계층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완전고용을 목표로 했던 복지국가 이념도 재정적자 심화와 만성적 인플레이션으로 ‘정부의 실패’를 낳고 말았다. 정부개입 축소, 민영화, 규제 철폐를 뼈대로 한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시장경제의 귀환이었다. 그러나 자본의 배분을 담당하는 금융까지 시장원리에 내맡기면서 과도한 금융자본의 팽창을 가져왔다. 이는 과잉 유동성과 거대한 부동산 거품을 불러왔고, 금융위기의 씨앗을 잉태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학술세미나에서 이를 ‘신금융자본주의’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세계 금융자산의 규모는 1980년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9%에 불과했으나 2005년에는 317%로 급증했다. 미국은 400%가 넘는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연구실장은 “금융자본이 팽창하면서 통제받지 않는 자본의 이동과 증식으로 금융시스템의 불안정 요인이 잠복해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금융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과 맞먹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다만 중앙은행 독립, 예금보험제도, 금산분리장치 등이 마련돼 있어 당시와 같은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작은 정부, 큰 시장’이란 시장지상주의에 제동이 걸릴 것은 분명하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규제 완화 정책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30여년 전 시작돼 이번에 사망선고를 받은 것들이다.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금융위기를 파생상품 등에 대한 감독 부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위기의 근본 원인은 오히려 과잉 유동성과 이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거품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 밑바닥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비대해진 금융자본이 존재한다. 미시적인 금융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 자체의 위기라는 얘기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시스템 안정성을 위해 적절한 정부 개입을 통한 시장설계가 필요하다”며 “그런 장치가 마련돼야 시장경제가 더욱 활발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남기 선임기자 jnamk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