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새로운 철의 장막 서나” 우려
동유럽도 ‘일괄지원 기금’ 찬반 나뉘어
동유럽도 ‘일괄지원 기금’ 찬반 나뉘어
“새로운 ‘철의 장막’을 세울 것인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는 동유럽의 간절한 호소가 끝내 먹히지 않았다. 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페렌츠 주르차니 헝가리 총리는 “새로운 ‘철의 장막’이 유럽을 두 동강 내도록 놔둬선 안 된다”며, 동유럽 구제금융을 위해 1900억유로(약 377조원)의 기금 조성을 요청했다. 하지만 서유럽 지도자들의 반응은 싸늘했고, 기금 조성 요구는 거부당했다. <더 타임스>는 2일 “유럽이 경제위기로 인해 ‘부유한 유럽’과 ‘가난한 유럽’으로 쪼개질 형편”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유럽의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중부유럽과 동유럽 모든 나라의 상황이 똑같다고 보지 않는다”며 “(유럽연합 차원의 지원은) 사안별로 다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기금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앞서 주르차니 총리는 “올해 동유럽 경제재건을 위해 지역 국내총생산(GDP)의 30%가량인 3천억유로가 필요하다”며 “파격적 구제금융 조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유럽연합 회원국 내에서 최소한 500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각국 정상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동유럽 나라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보였다. 체코와 폴란드 등은 일괄 구제금융 기금 조성에 반대했다. 두 나라의 경우, 헝가리와 루마니아, 발트3국 등 거의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나라들과는 처지가 다른 탓이다.
<뉴욕 타임스>는 2일 “불확실한 리더십과 강력하고 단일한 제도의 부재로 말미암아 유럽연합이 27개 회원국간의 불균형에서 초래된 위기를 맞아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연대’라는 전통적 개념은 각국의 보호주의 압력과 유로화에 대한 엄격한 기준 등에 의해 침식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특히, 옛소련에 속해 있던 유럽연합 신생 회원국들의 경제위기가 내재된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신문은 “소련 붕괴 뒤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 통합의 대가로 서유럽의 자본주의 모델을 신속히 받아들였다”며 “그러나 지금 그 모델의 긍정적 기능은 퇴색했고, 동유럽은 표류할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다. 이들은 이미 은행 재자본화를 위해 3800억달러를 썼고, 3조1700억달러의 은행대출 지급보증에 나선 바 있다. 자국 경제 살리기를 위한 조처만으로도 피로도가 높다는 뜻이다. 동유럽 국가들이 뚜렷한 개혁 조처는 없이 빌려간 외채만 흥청망청 썼다는 불만도 터져나온다. 그렇다고 동유럽에 거액을 투자한 서유럽이 동유럽의 침몰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주간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독일은 스스로 내키지 않을지라도 유럽의 ‘경리부장’”이라며 “유럽의 곤궁한 나라들을 돕는 일을 피해 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고 전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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