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늘고 주가 64% 뛰었지만
국민들 “경기 회복 못느껴” 81%
급여 인상 조짐 있지만 소폭 그쳐
소비세 인상 영향 성장 급락 우려
재정 불안에 엔화 더 약세 될수도
국민들 “경기 회복 못느껴” 81%
급여 인상 조짐 있지만 소폭 그쳐
소비세 인상 영향 성장 급락 우려
재정 불안에 엔화 더 약세 될수도
일본의 백화점이나 유통업체들은 새해가 되면 ‘후쿠부쿠로’를 판다. 한국말로 ‘복주머니’를 뜻하는 후쿠부쿠로엔 판매업체가 고른 여러 물품이 들어있다. 손님은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른 채 이것을 사서 한 해 운을 점치기도 한다. 일본 포털사이트 슈푸(shufoo)가 최근 성인남녀 8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1만엔 이상짜리 후쿠부쿠로를 사겠다는 사람이 지난해보다 12% 늘었다. 연말을 맞는 일본인들의 표정은 밝다.
16일로 취임 한 돌을 맞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진한 ‘아베노믹스’가 여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금융완화, 재정지출 확대, 성장전략이라는 이른바 ‘3개의 화살’ 가운데 금융완화의 효과가 가장 두드러진다. 돈이 풀리자 엔화 가치가 떨어져, 엔-달러 환율이 1년 전의 82엔대에서 11일 102엔대 후반으로 올라 있다. 이 덕분에 수출 대기업의 실적이 호전돼 닛케이평균주가가 9488엔에서 1만5515엔까지 63.5%나 뛰었다. 둘 다 연중 최고치 근처에 다가서 있다.
그러나 가계소비가 본격 증가하는 움직임이 없고, 근원물가 상승률도 10월 기준 0.3%에 머물러 금융완화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는 예상이 많다. <로이터> 통신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조사 대상 기업의 64%가 내년 4~6월 전에 추가금융 완화가 이뤄지리라 예상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양적 완화를 축소하면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일본경제가 금융완화를 마중물로 삼아, 앞으로 샘물을 계속 퍼올릴 수 있느냐다.
“기업 경영자들한테 임금을 올리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면 급여가 오르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아베 총리는 9일치 <블룸버그>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 실적이 호전되자 급여가 오르는 조짐이 있기는 하다. 인재파견업체 인텔리전스는 2일 발표한 자료에서 올해 일본 월급쟁이의 평균 연수입이 446만엔으로 지난해보다 4만엔 늘었다고 밝혔다. 평균 연수입이 증가한 것은 4년 만의 일이지만, 증가율이 매우 낮다. 급여 상승의 온기는 대기업체 정규직에 국한돼, 가계소비가 1년 전 수준에서 거의 변화가 없다. <산케이신문>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경기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고 대답한 비율이 81%에 이르렀다. 일본은 내년 4월 소비세율을 5%에서 8%로 인상하고, 2015년 10월 10%로 추가 인상할 예정이다. 이 또한 가계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아베 정부는 농업의 대규모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규제완화, 법인세 인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 등을 통해 성장력을 높이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런 정책들은 소득격차를 높인다. 내수 중심인 일본경제에서 소비 증가를 이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아베 정부는 공공사업 지출을 크게 늘렸으나, 재정 지출로 경기부양을 계속하기엔 재정불안이 걸림돌이다. 일본은 2013 회계연도 말 국가부채 비율이 227%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200%를 넘는 나라가 된다. 올해 일반회계 세출 92.6조엔 가운데 세수로 충당한 것은 43.1조엔에 그쳤다. 외국투자자들이 일본의 재정에 불안감을 갖기 시작하면, 국채 이자율이 급등할 위험이 있다.
이런 사정 탓에 금융완화의 효과가 사그라지면 일본 경제의 성장률이 급락하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시라이 데쓰조 크레디트 스위스 증권 수석분석가는 주간지 <아에라>에 쓴 글에서 “금융완화의 효과는 오래가지 않고 공공사업도 규모가 축소돼가고 있어서 내년이면 효과가 끝나는데, 소비세 인상의 악영향은 1년~1년 반 뒤에 나타난다”며 “2015년에는 심한 불황이 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지난달 19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일본의 성장률이 올해 1.8%에서 2014년 1.5%, 2015년 1.0%로 낮아지리라고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많다. 아베노믹스 이전에는 안전자산 선호 현상으로 엔화가 강세였지만, 앞으로는 엔화가 안전하지 못한 통화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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