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그리스 사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그리스 사태’
▶ 요즘 그리스 3차 구제금융 협상 문제로 세계가 시끄러웠죠. 채무상환 기일을 맞추지 못한 그리스에 채권단은 자신들의 협상안을 받아들이라 으르릉거렸어요. 혹시 기사를 읽다가 머리가 아픈 적은 없었나요? 그래서 딱 초등학생 4학년의 눈높이로 풀어봤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기사를 보여주세요. 현재 세종시에서 기획재정부를 출입하는 김경락 경제부 기자는 지난 3월 <내 동생도 알아듣는 쉬운 경제>(사계절)라는 어린이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지중해의 작은 나라 그리스가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제우스와 아프로디테가 살던 나라이지요. 이번에 그리스가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이유는 바로 ‘빚’ 때문이랍니다. 돈을 빌려준 쪽에선 제때 갚으라 하고, 그리스는 유럽을 떠날 수도 있다며 더 꾸어달라고 합니다. 이런 다툼 속에 세계경제는 출렁이고, 심지어 지구 반대편 우리나라 경제도 어려워진다고들 합니다. 도대체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그리스가 어려운데 왜 우리나라가 걱정을 하는 걸까요? 그리스가 유럽을 떠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또 뭔가요?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그리스 사태’를 한줄 한줄 풀어가 봅시다.
그리스 빚이 많다는데…
그리스 정부는 빚더미에 올라 있습니다. 3230억유로나 되지요. 우리 돈으로 387조원이 넘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한 해 동안 물건을 팔아 남긴 수익의 2.6배가 넘습니다. 숫자가 너무 커서 가늠이 잘 되지는 않을 거예요.
“에이, 그리스 빚 별로 안 많던데요. 독일이 그리스보다 7배나 빚이 더 많잖아요. 그래도 독일은 부자 나라 아닌가요?”
맞습니다. 사실 빚의 절대 규모 자체는 그리스보다 훨씬 큰 나라가 많습니다. 하지만 말이죠, 더 중요한 건 ‘빚 비율’입니다. 국제사회는 나라 전체 경제 크기에서 얼마만큼 빚이 차지하는가를 좀 더 중요한 잣대로 삼아요. 빚 비율이 빚 부담을 더 잘 보여준다고 보는 거지요. 여러분과 부모님이 모두 똑같이 1000원을 꾸었더라도 빚 부담은 서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리스 정부의 ‘빚 비율’은 현재 180%가 넘습니다. 한 해 동안 나라 안 사람들과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모두 더한 금액보다 빚 크기가 두 배 가까이 되는 셈이지요. 세계에서 최상위권이고 유럽에선 1등입니다. 독일은 그리스보다 빚 크기는 7배 더 크지만 빚 비율은 80%가 채 되지 않아요. 빚만큼이나 경제규모도 크기 때문이지요.
그리스 빚은 좀 특이합니다. 보통 다른 나라들이 안고 있는 빚과는 성격이 달라요. 정부는 보통 시장에서 채권을 팔아 돈을 꿉니다. 채권은 언제까지 돈을 다 갚겠다는 약속과 다 갚을 때까지 매달 얼마간의 이자를 주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죠. 이 약속을 믿는 쪽이 많으면 좀 싸게 돈을 빌릴 수 있고, 적으면 비싸게 빌려야 합니다. 이자를 더 줘야 하고 빨리 갚아야 한다는 것이죠.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 똑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그리스 정부는 이런 형태로 돈을 더 이상 빌릴 수 없는 상태입니다. 2010년부터 그랬어요. 그리스 정부의 약속을 믿고 돈을 꿔주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돈을 빌려줘봤자 떼일 거라고 다들 생각한 거지요. 그래서 지금 그리스의 빚 대부분은 국제통화기금(IMF)·유럽중앙은행(ECB)·유럽연합(EU)에서 꾼 돈입니다. 이들 기구는 그리스처럼 신뢰를 잃어버린 나라에 돈을 꿔주는 곳입니다.
정상적으로 돈을 빌리지 못하는 나라를 돕는다는 뜻에서 이들이 빌려주는 돈을 ‘구제금융’이라고도 부르지요. 구제에 첫번째 목적이 있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돈을 꿔주는, 여러분이 흔히 접하는 은행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왜 다를까? : 빌려준 사람들 이야기
그렇다고 구제금융이 공짜란 뜻은 아닙니다. 또 누구나 막 가져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무언가를 요구하지요. 아무도 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돈을 꿔줬으니 그에 따른 대가를 요구하는 겁니다. 이 요구를 받아들지 않으면 구제금융은 없습니다. 이 요구는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는 법까지 바꿔야 하기도 합니다.
국제통화기금 등은 크게 세 가지를 그리스 정부에 요구했어요. 돈을 적게 쓰고(긴축), 세금을 더 걷고(증세), 정부 재산을 팔아라(국유재산 매각). 한마디로 허리띠 졸라매라는 게 이들의 요청입니다.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 걸쳐 구제금융을 줄 때 이런 요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국제통화기금 등은 그리스가 이 요구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고 보는 모양입니다. 허리띠를 더 졸라맬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다는 거죠. 이렇게 생각하니 이번에 그리스가 또 돈을 빌려달라며 손을 벌리자, 이번만큼은 돈을 더 꿔줄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 국민이 세금을 잘 내지 않고 있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은 일을 해서 지갑을 채우지만 정부는 세금을 걷어 곳간을 채웁니다. 국민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나라 곳간이 비게 되고 결국 돈을 빌려야 하거나 이미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리스 정부가 100원을 세금으로 매기면 정작 정부로 들어오는 돈은 10원 정도에 불과합니다. 부정부패 등으로 세금 걷는 일을 정부가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돈을 꿔준 쪽은 보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라면 세금을 내야 하지만 전혀 내지 않는 경우도 그리스엔 많습니다. 그리스 국민이 세금을 잘 안 낼 뿐만 아니라 세금을 매기는 데 근거가 되는 소득 자체를 많이 숨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 예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스 정부가 수영장 딸린 집에 사는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두기 위해 위성사진으로 조사했더니 수영장이 1만6974개나 발견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정부에 수영장 딸린 집이 있다고 이실직고한 부자는 324명에 불과했다고 해요. 그리스의 맨얼굴을 본 다른 유럽 나라 국민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빚 갚을 능력이 있는 그리스한테 왜 내가 낸 세금으로 돈을 빌려주냐.” 여러분 생각도 비슷하지요?
그리스 빚이 자그마치 3230억유로
한국 기업 일년 수익 2배가 넘어
국제통화기금 등한테 빌린 돈이라
긴축, 증세… 간섭하는 게 많은데
그 때문에 더 악화됐다는 말도 있어 유로를 안 썼다면, 수출 많이 해서
‘위기탈출 넘버원’ 됐겠지만
유럽통합 덕분에 평화 얻었거든
다른 나라로 불 번지면 커질 수 있어
우리나라도 조심하고 지켜봐야 해 왜 다를까? : 그리스 사람들 이야기 그리스 사람들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더 졸라맬 허리가 없다고 항변합니다. 물론 부정부패를 줄이고 세금 걷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수긍합니다. 그러나 당장 너무 힘드니 빚을 깎아주고 돈도 더 꿔달라고 합니다. 생떼라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리스 형편이 너무 어려워진 이유에는 돈을 빌려준 쪽 책임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통화기금 등은 그리스에 돈을 꿔주면서 씀씀이를 줄이고 세금을 더 걷으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고 앞에서 소개했습니다. 이런 요구는 빌려준 돈을 제때 돌려받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요구에 잘 따르면 그리스 형편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세 가지 요구는 병든 그리스를 치료할 처방전이지요. 하지만 그리스는 이 처방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처방에 따라 경제를 운영했더니 형편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진 거지요. 국제통화기금 등의 처방전이 치료제나 영양제이기는커녕 불량식품이었다는 뜻입니다. 처음 구제금융을 받은 2010년 이후 최근까지 그리스의 경제 규모는 4분의 1이나 쪼그라들었습니다. 매년 성장하기는커녕 외려 퇴보한 거지요. 또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 100명 중에 25명이나 취직을 못하고 있어요. 일을 하지 못하니 살림살이는 또 얼마나 팍팍해졌겠어요. 이런 이유로 올해 초에 그리스 국민은 국제통화기금 등의 요구에 맞서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정치인을 지도자로 뽑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금 이 지도자를 지지한다는 뜻을 다지기도 했어요. 이름 높은 경제학자들도 국제통화기금 등이 제시한 처방전에 의구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 같은 분들이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지요. 이런 학자들은 형편이 어려운 나라의 정부가 씀씀이를 더 줄이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돈이 없어 공장도 못 돌리고 물건도 안 사는데, 정부마저 지갑을 닫으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느냐는 거지요. 정부가 경제가 돌아가도록 돈을 꾸어서라도 마중물을 계속 부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국제통화기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자기네가 돈을 꿔준 나라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빚을 좀 더 늘려서라도 돈을 써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다닙니다. 유로존을 지켜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유로존’이 문제라고도 말합니다. 그리스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유로존을 떠날 수 있다고 은연중에 말하지요. 돈을 빌려준 쪽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일만큼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유로존은 유럽 국가 중 유로를 쓰는 19개 국가를 가리킵니다. 나라는 다르지만 똑같은 돈, ‘유로’를 씁니다. 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지요. 1999년 1월1일부터 사용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가 같은 돈을 사용하면 편리한 점도 있지만 다른 돈을 사용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리스 문제와 관련해 ‘유로존이 문제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와 관련이 돼 있지요.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처럼 각자 나라마다 다른 돈을 쓰고 있다면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서로 다른 돈을 쓰는 이유만으로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경제가 나빠질 땐 돈의 가치도 떨어져 수출이 더 쉬워집니다. 예컨대 평소에는 미국에서 2달러에 팔리던 우리나라에서 만든 2000원짜리 공책이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똑같은 2000원짜리 공책이 1달러에 팔리게 됩니다. 미국 학생들은 값이 더 싸졌으니 우리나라 공책을 더 사게 되고 따라서 공책 수출이 늘어납니다. 수출 주문이 늘면 공장도 더 많이 돌고, 일자리도 더 생깁니다. 경제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유로존처럼 서로 다른 나라가 같은 돈을 쓰게 되면 이런 이점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가 이런 경우이지요. 유로를 쓰지 않았다면 앞서 말한 원리대로 살림살이가 좋아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럼 처음부터 그리스가 유로존에 들어간 게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지만 또 그렇게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로존을 만든 이유가 단순히 같은 돈을 쓰려는 목적만 있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사실 유로존을 만든 목적은 평화로운 유럽을 만들자는 뜻이 컸습니다. 같은 돈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유럽 대륙 전체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단단히 묶어서 싸우지 말자는 의도였지요. 그간 유럽에선 20세기에 들어서만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이 두 번이나 터질 정도로 나라 간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군사적·정치적 혼란이 유럽 대륙에서 퍼져나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스를 왜 우리가 걱정하지? 그리스의 경제 불안이 한창일 때 우리나라 금융인들이나 경제 담당 공무원들은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매일 아침 회의를 열어 그리스 상황을 점검하고 다른 나라 금융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살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들 중에도 주식투자 하시는 분들은 노심초사하며 그리스 관련 뉴스를 챙겨 보셨을 거예요. 그리스 위기가 지구 반대쪽에 있는 우리나라를 전전긍긍하게 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토엔 국경이 있지만 시장엔 국경이 없거나 나라 간 문턱이 낮기 때문이죠. 국경을 넘어 물건을 사고파는 무역과 돈을 넣고 빼며 돈을 버는 투자 활동 덕택에 경제 영역에서만큼은 나라는 달라도 서로 묶여 있는 것이죠. 무역과 투자의 규모가 클수록 그만큼 연관성도 높아집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와 무역 규모가 가장 큰 중국과 미국과의 상관도보다는 그리스와의 상관도가 떨어지긴 합니다. 정부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 무역 규모 중 단 5% 정도만 그리스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까요. 그리스와의 직접 교류가 적기 때문에 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이 역시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리스의 불이 언제든지 옮아갈 수 있을 정도로 주변 나라들 상황도 좋지 않거든요. 그리스에 가까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도 그리스만큼 빚이 많은 나라이고 살림살이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리스 불안이 아직은 터지지 않은 잠재적인 폭탄을 자극할 수 있는 거지요. 이렇게 범위가 넓어지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나라로의 영향력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리스 위기를 바라보는 핵심은 그리스에 난 불이 그리스 내부에서 꺼질 것인지, 아니면 주변국으로 옮겨붙을 것인지, 심지어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면서 유럽 대륙 전체로 불이 빠르게 확산될 것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리스 사태가 한숨 돌리는 것 같아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꿔준 국제통화기금과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을 이끌고 있는 유럽 지도자들이 이미 꿔준 돈은 천천히 갚고, 또 필요한 돈을 더 빌려주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그리스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갈지 앞으로도 주목해보아요.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한국 기업 일년 수익 2배가 넘어
국제통화기금 등한테 빌린 돈이라
긴축, 증세… 간섭하는 게 많은데
그 때문에 더 악화됐다는 말도 있어 유로를 안 썼다면, 수출 많이 해서
‘위기탈출 넘버원’ 됐겠지만
유럽통합 덕분에 평화 얻었거든
다른 나라로 불 번지면 커질 수 있어
우리나라도 조심하고 지켜봐야 해 왜 다를까? : 그리스 사람들 이야기 그리스 사람들 이야기는 전혀 다릅니다. 더 졸라맬 허리가 없다고 항변합니다. 물론 부정부패를 줄이고 세금 걷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수긍합니다. 그러나 당장 너무 힘드니 빚을 깎아주고 돈도 더 꿔달라고 합니다. 생떼라고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리스 형편이 너무 어려워진 이유에는 돈을 빌려준 쪽 책임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통화기금 등은 그리스에 돈을 꿔주면서 씀씀이를 줄이고 세금을 더 걷으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고 앞에서 소개했습니다. 이런 요구는 빌려준 돈을 제때 돌려받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런 요구에 잘 따르면 그리스 형편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선 세 가지 요구는 병든 그리스를 치료할 처방전이지요. 하지만 그리스는 이 처방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처방에 따라 경제를 운영했더니 형편이 좋아지기는커녕 더 어려워진 거지요. 국제통화기금 등의 처방전이 치료제나 영양제이기는커녕 불량식품이었다는 뜻입니다. 처음 구제금융을 받은 2010년 이후 최근까지 그리스의 경제 규모는 4분의 1이나 쪼그라들었습니다. 매년 성장하기는커녕 외려 퇴보한 거지요. 또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 100명 중에 25명이나 취직을 못하고 있어요. 일을 하지 못하니 살림살이는 또 얼마나 팍팍해졌겠어요. 이런 이유로 올해 초에 그리스 국민은 국제통화기금 등의 요구에 맞서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정치인을 지도자로 뽑기도 했고, 얼마 전에는 국민투표를 통해 다시금 이 지도자를 지지한다는 뜻을 다지기도 했어요. 이름 높은 경제학자들도 국제통화기금 등이 제시한 처방전에 의구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미국의 폴 크루그먼 교수 같은 분들이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지요. 이런 학자들은 형편이 어려운 나라의 정부가 씀씀이를 더 줄이면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돈이 없어 공장도 못 돌리고 물건도 안 사는데, 정부마저 지갑을 닫으면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느냐는 거지요. 정부가 경제가 돌아가도록 돈을 꾸어서라도 마중물을 계속 부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국제통화기금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자기네가 돈을 꿔준 나라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빚을 좀 더 늘려서라도 돈을 써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이야기를 열심히 하고 다닙니다. 유로존을 지켜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유로존’이 문제라고도 말합니다. 그리스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유로존을 떠날 수 있다고 은연중에 말하지요. 돈을 빌려준 쪽은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일만큼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유로존은 유럽 국가 중 유로를 쓰는 19개 국가를 가리킵니다. 나라는 다르지만 똑같은 돈, ‘유로’를 씁니다. 독일·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이지요. 1999년 1월1일부터 사용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가 같은 돈을 사용하면 편리한 점도 있지만 다른 돈을 사용할 때는 나타나지 않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리스 문제와 관련해 ‘유로존이 문제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와 관련이 돼 있지요. 우리나라와 일본, 미국처럼 각자 나라마다 다른 돈을 쓰고 있다면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서로 다른 돈을 쓰는 이유만으로 회복될 수가 있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경제가 나빠질 땐 돈의 가치도 떨어져 수출이 더 쉬워집니다. 예컨대 평소에는 미국에서 2달러에 팔리던 우리나라에서 만든 2000원짜리 공책이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지면 똑같은 2000원짜리 공책이 1달러에 팔리게 됩니다. 미국 학생들은 값이 더 싸졌으니 우리나라 공책을 더 사게 되고 따라서 공책 수출이 늘어납니다. 수출 주문이 늘면 공장도 더 많이 돌고, 일자리도 더 생깁니다. 경제가 다시 살아나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유로존처럼 서로 다른 나라가 같은 돈을 쓰게 되면 이런 이점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가 이런 경우이지요. 유로를 쓰지 않았다면 앞서 말한 원리대로 살림살이가 좋아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럼 처음부터 그리스가 유로존에 들어간 게 잘못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지만 또 그렇게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유로존을 만든 이유가 단순히 같은 돈을 쓰려는 목적만 있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사실 유로존을 만든 목적은 평화로운 유럽을 만들자는 뜻이 컸습니다. 같은 돈을 쓰는 것을 시작으로 유럽 대륙 전체를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단단히 묶어서 싸우지 말자는 의도였지요. 그간 유럽에선 20세기에 들어서만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이 두 번이나 터질 정도로 나라 간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 군사적·정치적 혼란이 유럽 대륙에서 퍼져나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리스를 왜 우리가 걱정하지? 그리스의 경제 불안이 한창일 때 우리나라 금융인들이나 경제 담당 공무원들은 매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매일 아침 회의를 열어 그리스 상황을 점검하고 다른 나라 금융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살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들 중에도 주식투자 하시는 분들은 노심초사하며 그리스 관련 뉴스를 챙겨 보셨을 거예요. 그리스 위기가 지구 반대쪽에 있는 우리나라를 전전긍긍하게 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토엔 국경이 있지만 시장엔 국경이 없거나 나라 간 문턱이 낮기 때문이죠. 국경을 넘어 물건을 사고파는 무역과 돈을 넣고 빼며 돈을 버는 투자 활동 덕택에 경제 영역에서만큼은 나라는 달라도 서로 묶여 있는 것이죠. 무역과 투자의 규모가 클수록 그만큼 연관성도 높아집니다. 이런 점에서는 우리와 무역 규모가 가장 큰 중국과 미국과의 상관도보다는 그리스와의 상관도가 떨어지긴 합니다. 정부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 무역 규모 중 단 5% 정도만 그리스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까요. 그리스와의 직접 교류가 적기 때문에 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이 역시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리스의 불이 언제든지 옮아갈 수 있을 정도로 주변 나라들 상황도 좋지 않거든요. 그리스에 가까운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등도 그리스만큼 빚이 많은 나라이고 살림살이도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리스 불안이 아직은 터지지 않은 잠재적인 폭탄을 자극할 수 있는 거지요. 이렇게 범위가 넓어지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나라로의 영향력도 커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리스 위기를 바라보는 핵심은 그리스에 난 불이 그리스 내부에서 꺼질 것인지, 아니면 주변국으로 옮겨붙을 것인지, 심지어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면서 유럽 대륙 전체로 불이 빠르게 확산될 것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그리스 사태가 한숨 돌리는 것 같아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을 꿔준 국제통화기금과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을 이끌고 있는 유럽 지도자들이 이미 꿔준 돈은 천천히 갚고, 또 필요한 돈을 더 빌려주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입니다. 유럽이 그리스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나갈지 앞으로도 주목해보아요.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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