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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폐간’ 빈과일보 기자…“언론자유 죽은 홍콩, 중국·북한이 됐다”

등록 2021-07-13 04:59수정 2021-07-13 20:51

홍콩 시민들이 지난달 24일치를 끝으로 폐간한 친민주 반중국 성향 <핑궈일보>를 사려고 가판대에 길게 줄을 선 가운데, 한 시민이 신문을 산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마지막 신문의 1면 제목은 ‘홍콩인들, 빗속에서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하다. 우리는 <핑궈일보>를 지지한다’였다. 홍콩/AP 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지난달 24일치를 끝으로 폐간한 친민주 반중국 성향 <핑궈일보>를 사려고 가판대에 길게 줄을 선 가운데, 한 시민이 신문을 산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마지막 신문의 1면 제목은 ‘홍콩인들, 빗속에서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하다. 우리는 <핑궈일보>를 지지한다’였다. 홍콩/AP 연합뉴스

중국 공산당 창당 100돌 기념일(7월1일)을 일주일 앞둔 지난달 24일 홍콩의 대표적인 ‘반중국 친민주’ 언론 <핑궈(빈과)일보>(이하 핑궈일보)가 폐간했다. 사주의 구속과 주요 경영진 체포, 회사 자산 동결 등 최근 1년 동안 집중된 홍콩 당국의 탄압을 견디지 못했다.

<한겨레>는 핑궈일보 폐간 이후 이직을 준비하며 두문불출하던 해직 기자들을 수소문했고, 최근 장젠예(38) 기자, 리즈위(30·필명) 기자, 웬키(29) 기자와 전자우편과 메신저를 통해 인터뷰했다. 이들은 “홍콩의 언론 자유가 죽었다”며 “홍콩이 중국·북한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핑궈일보는 중국 공산당이나 홍콩 당국이 규정한 경계선(레드라인)을 넘는 한이 있더라도, 공익과 관련된 뉴스라면 정직하고 용감하게 보도했다.” 웬키 기자의 분석은 핑궈일보 기자들뿐 아니라 전세계 주요 언론이 동의하는 ‘핑궈일보 폐간 사유’다.

다만 장 기자는 “그날(폐간)이 예상보다 빨랐다”고 말했다. “4, 5월부터 홍콩 정가에 정부가 7월1일 이전에 핑궈일보를 폐간시키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5월 직원회의 때는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며 “지금 보니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도둑처럼 들이닥친 폐간 이후, 리 기자는 “홍콩의 언론 자유가 완전히 소진됐다”고 한탄했다. 그는 “홍콩 유력 언론 <명보>는 말레이시아 자본이,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 알리바바가, 가장 큰 방송사 <티브이비>(TVB)는 중국 자본이 소유하고 있다”며 “핑궈일보의 폐간은 예전에 누렸던 홍콩의 자유가 소멸하고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장젠예 기자가 &lt;핑궈일보&gt;에서 사용하던 책상. 본인 제공
장젠예 기자가 <핑궈일보>에서 사용하던 책상. 본인 제공

동영상 제작하던 장젠예

동료들과 만든 동영상뉴스 다운로드

“지금 당장 인터넷 못 올려도 보존

핑궈일보 출신 탓 이직 어려울 수도”

대만 출신 장젠예 기자는 대학 졸업 뒤 2005년 홍콩으로 건너와 언론계에 종사해왔다. 중국계 자본이 투자한 홍콩 <펑황위성텔레비전>에서 일하다 지난해 2월 퇴사했고, 그해 10월 핑궈일보에 합류했다. ‘동신원’이라는 동영상 뉴스를 만드는 게 그의 업무였다. 그는 “홍콩에서 표현의 자유가 지난해 6월 홍콩 국가보안법(보안법) 도입 이후 한 방울, 한 방울씩 사라져간다”며 “핑궈일보 폐간은 상징적인 사건일 뿐”이라고 말했다.

장 기자의 업무는 마지막 신문 발행일인 지난달 24일보다 사흘 앞선 21일 중단됐다. 편집 직원들이 퇴직해 동영상 편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개인 물건을 모두 챙겨 나온 장 기자는 24일 저녁 다시 회사에 돌아갔다. 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진짜 이유는 동영상 뉴스들을 내려받기 위해서였다. “빠른 시간 안에 인터넷에 다시 올리진 못하겠지만, 동료들이 만든 수년 동안의 동영상을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장 기자가 기억하는 창업자 지미 라이(리즈잉)는 직원들을 살갑게 챙기는 큰형님이었다. “사소한 것이긴 한데, 리 사장은 직원들 건강을 생각해 종종 편집국 각 부서에 사과와 바나나, 배 같은 과일을 보내곤 했어요.” 그는 “지미 라이처럼 감옥에 갈 때까지 자기 뜻을 유지할 사람이 홍콩에 1명이라도 더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에게 핑궈일보는 홍콩의 언론 자유도를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핑궈일보는 1995년 창간 때부터 서구의 민주적 가치를 창간 정신으로 내세웠어요. 줄곧 홍콩 민주파의 목소리를 대표했고, 홍콩인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했죠. 홍콩 주권이 중국 정부로 넘어간 뒤에도 표현의 자유가 유지되는지 보려면 핑궈일보의 보도를 보면 됐어요.”

중국 정부는 기업 광고를 막는 정도로 핑궈일보를 압박했지만 2년 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2019년 홍콩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주화 운동은 중국 공산당이 전면적으로 홍콩 통제에 나서는 빌미가 됐어요. 시위대 편을 든 핑궈일보는 당연히 손봐야 할 첫 대상이 됐죠. 외세와 결탁했다는 죄명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그는 핑궈일보 퇴직 뒤 마음을 다스리며 며칠째 두문불출하고 있다. “현재 취업을 준비 중인데 핑궈일보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입사 과정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돼요.” 직위와 급여가 예전만 못할 수 있다는 것도 불안하다. 이민을 고민하는 동료도 상당수다. 장 기자는 “영국이나 대만으로 이민을 생각하는 동료가 적지 않다”며 “홍콩에 남더라도 언론 분야에서 일을 하지 않겠다는 동료가 많다”고 말했다.

리즈위(필명) &lt;핑궈일보 기자&gt;. 본인 제공
리즈위(필명) <핑궈일보 기자>. 본인 제공

중국팀에서 일한 리즈위

폐간일 마지막 기사 마감뒤 눈물

“시민들의 응원에 눈시울 붉어져

언론계 다시 돌아가 일하고 싶어”

리즈위 기자는 핑궈일보 중국팀에서 일하다 퇴직을 맞았다. 7년차 기자인 그는 홍콩의 여러 언론사에서 일하다 2019년 핑궈일보에 합류했다.

그는 핑궈일보가 폐간하던 지난달 24일 마지막 기사를 출고한 뒤 동료들과 함께 건물 옥상에 올라갔다. 건물 밖에 몇몇 시민들이 찾아와 기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신문 폐간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건물 밖 시민들을 본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는 요즘 한가한 틈을 타 책도 읽고 연극도 보지만 “빨리 언론계로 돌아가 다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리 기자는 핑궈일보가 중국 당국의 타깃이 된 이유로 사주 지미 라이의 끈질긴 민주 활동을 꼽았다. “지미 라이는 지난해 7월1일 홍콩 보안법이 도입된 뒤에도 홍콩의 민주와 자유를 지지했습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의 오랜 적이었죠. 다른 홍콩 매체들은 이 정도의 대항력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괜찮은 것입니다.”

리 기자는 지난달 24일 올린 ‘핑궈일보 안녕, 홍콩의 자유여 안녕’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기사에서 “지미 라이와 핑궈일보는 홍콩 보안법에 맞서 줄곧 자유의 최전선을 달렸다. 이들은 비록 버티지 못했지만 백만 홍콩인의 지지를 받았다”고 썼다. 그의 기사는 핑궈일보의 모든 기사가 온라인에서 삭제되면서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웬키 &lt;핑궈일보&gt; 기자. 본인 제공
웬키 <핑궈일보> 기자. 본인 제공

지역뉴스 다뤘던 웬키

발행 중단 소식 폐간 하루 전 들어

“홍콩 매체 중 가장 날카로운 탄압

기자들 정부 반대 의견 질문 피해”

2년 동안 핑궈일보에서 지역 뉴스를 주로 다뤘던 웬키는 신문 발행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폐간 하루 전날인 23일 들었다. 쉬는 날이었다. 그는 곧바로 회사로 달려가 동료들에게 도울 일이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폐간 소식을 들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가슴 아프고, 절망적이고, 충격적이었어요. 지금도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는 퇴직 후 매일 운동과 명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핑궈일보는 어떤 위협에도 할 말은 하는 언론이었다. 핑궈일보가 중국 당국의 집중 타깃이 된 것은 이런 이유였다. 웬키는 “홍콩에 있는 모든 매체 중에서 핑궈일보가 가장 날카로웠다”며 “홍콩의 모든 매체를 컨트롤하기 위해 핑궈일보에 대한 탄압이 첫번째 단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보안법 도입 이후 홍콩 언론들이 침묵을 강요받고 스스로 검열에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홍콩 보안법 도입으로 경찰은 발언자뿐만 아니라 이를 보도한 기자, 심지어 편집자까지 체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경계선이 도입되면서 검열이 시작됐습니다.” 그는 “예를 들어, 기자들은 민감한 뉴스를 쓸 때는 본인의 바이라인(이름)을 기사에 적는 것을 피하게 됐고,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이들과 인터뷰하는 것도 피하기 시작했다”며 “정부에 반대되는 의견을 묻는 것을 피하게 되면서 뉴스는 단조로운 톤으로만 구성된다”고 말했다. 웬키는 “이런 모든 행동들은 정말 이상하다”며 “그들이 우리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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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초부터 중국 정부 비리 폭로… 사주 체포되며 내리막

26년 만에 폐간하는 핑궈일보는

지미 라이, 홍콩 민주화 세력 지원

중 기관지 “홍콩 재앙 4인방” 꼽아

지난달 24일 폐간한 홍콩 종합일간지 <핑궈(빈과)일보>(이하 핑궈일보)는 패션회사 지오다노를 창업한 지미 라이(73)가 1995년 창간했다. 창간 초부터 중국 정부의 비리와 문제점을 폭로해 큰 관심을 받았고, 사회·연예·스포츠 등 분야의 가십성 보도를 많이 다뤄 선정적이라는 평가도 들었다. 창간 첫해 하루 최대 발행 부수가 70만부에 이르기도 했다.

핑궈일보는 여타 홍콩 언론과 달리 ‘친민주 반중국’ 성향을 꾸준히 유지했다. 중도 성향의 홍콩 유력 언론인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나 4대 일간지 중 하나인 <싱다오일보> 등이 중국 기업에 인수됐지만 핑궈일보는 독립 경영을 유지하며 반중 기치를 버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오랜 타깃이 됐다. 특히 중국 공산당 창당 70주년 기념일(7월1일)을 보름 앞둔 지난달 중순부터 경영진 체포, 신문사 압수수색, 회사 자산 동결 등 집중적인 탄압이 이어지면서 결국 폐간에 이르렀다.

핑궈일보의 흥망은 사주인 홍콩 사업가 지미 라이의 행보와 떼놓고 말하기 어렵다. 1981년 홍콩에서 중저가 의류 브랜드 지오다노를 창업해 성공을 거둔 지미 라이는 1989년 중국 베이징 천안문(톈안먼) 유혈진압 사건을 보고 자유로운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한다. 이후 <넥스트 매거진>이라는 주간지를 창간했다. 1994년에는 지오다노를 매각한 뒤 이듬해 핑궈일보를 여는 등 본격적으로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2003년 대만에 진출해 대만 핑궈일보를 열었고, 2010년에는 케이블 방송인 <넥스트티브이(TV)>를 개국했다. 대만 핑궈일보는 지난 5월18일 경영난을 이유로 인쇄본 발행을 중단했다.

중화권의 언론 재벌로 자리매김한 지미 라이는 홍콩 민주화 세력을 꾸준히 지원했고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인 이른바 ‘우산 혁명’에 적극 참여했다. 중국은 기업들로 하여금 지미 라이 소유의 언론 매체들에 광고를 주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압박했다.

지미 라이는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이른바 ‘반송법’ 제정에 반대해 다시 시작된 대규모 홍콩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눈엣가시인 그를 ‘홍콩에 재앙을 주는 4인방’ 중 물주이자 우두머리로 규정했다.

중국은 지난해 6월 말 홍콩의 안보를 위협하는 이들을 처벌한다는 명분으로 홍콩 국가보안법(보안법)을 발효했고, 그해 8월10일 지미 라이를 홍콩 보안법 위반(외세결탁)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불법 시위 등 혐의로 징역 20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평생의 신념이 담긴 핑궈일보의 폐간을 지켜봐야 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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