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인의 주식인 빵, 발라디. 위키피디아 갈무리
이집트가 수십 년 동안 보조금을 지급해 1개당 4원 수준에 판매하던 빵 ‘발라디’의 가격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빵값을 현실화해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인데, 국민들의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 통신 등 보도를 보면, 3일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나일강 인근 식품산업단지 개장식에 참여해 빵값 인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정부 보조금이 투입되는 빵값은 지난 20∼30년간 변함이 없었다. 빵 20개를 담배 한 개비 가격에 팔다니 믿을 수 없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상황 변화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우리는 모든 국민의 생계와 운명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집트인들은 넓적하고 속이 빈 밀빵인 발라디를 주식으로 먹는다. 이집트 어디를 가든 아침, 점심, 저녁 특정 시간에 주민들이 줄을 지어 빵을 지급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빵은 정부 보조금으로 만들어지며, 시중에서 시세보다 훨씬 싼 개당 0.05이집트 파운드(3.7원)에 살 수 있다. 1억400만명의 이집트인들 가운데 60%에 이르는 6천만명 이상이 이 빵을 하루 5개씩 살 수 있다. 한국 돈 20원이면 빵 5개를 살 수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정부 당시 빵 가격을 인상했다가 이른바 ‘빵 봉기’라고 불리는 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70여명이 죽고, 1천여명이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정부는 이후 빵 보조금을 확대하는 등 주민 달래기에 나섰다.
이후 이집트 정부는 1980년대, 1990년대 식료품에 대한 정부 보조금 규모를 줄였으나, 빵값만은 올리지 않고 빵의 중량을 낮추는 것으로 대신했다. 빵 가격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민감함을 의식한 것이다.
엘시시 정부가 실제 빵 가격 인상을 결정할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줄어 서민들의 삶이 타격을 받은 가운데 정부가 빵 가격 인상 조처까지 취할 경우 국민들의 불만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엘시시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이날 트위터에는 물가인상 대상에서 “빵은 제외하라”는 게시물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