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권운동가들이 1일(현지시각) 텍사스주 에딘버그 시청 앞에서 임신중지를 사실상 금지하는 법 시행에 맞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에딘버그/AP 연합뉴스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허용된 임신중지 권리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키는 규제법이 1일 텍사스주에서 시행에 들어갔다. 법 시행을 막기 위해 인권운동가 등이 연방대법원에 제기한 긴급 요청은 2일 오전 대법관들의 5 대 4 표결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 법은 의료인이 태아의 심장박동을 확인한 뒤에는 어떤 경우에도 임신을 중지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때는 보통 임신 6주부터이고, 현재 대다수의 중절이 6주 이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중절을 사실상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다만, 연방 차원의 개입을 피하려고 정부기관이 법 위반을 단속하지 않고 시민의 고발만 허용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이 법에 따르면, 시민들은 누구나 임신중절 수술을 시행하거나 돕는 사람을 고발할 수 있고, 고발한 사람은 최소 1만달러(약 1200만원)를 받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신중절을 원하는 이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만으로도 고발당할 수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인권운동가들은 물론 조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한 민주당 정치인들도 이 법이 헌법적 권리를 위반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 행정부는 이 권리를 지키고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주마다 임신중지 규정이 다르지만 텍사스처럼 사실상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주는 없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10여개 주가 임신 6주 이후 중절을 금지하는 법 제정을 시도했으나 모두 법원에 의해 저지됐다.
텍사스 외에 규정이 가장 엄격한 곳은 임신 20주 이후에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 임신중지를 금지한 미시시피주다. 미시시피에서는 이 시기를 임신 6주 이후로 앞당기는 법 시행을 놓고 법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오하이오 등 17개 주는 22주 이후부터, 플로리다 등 4개 주는 24주 이후부터, 버지니아는 임신 뒤 6개월(25주 이후)부터 금지한다. 뉴욕·캘리포니아 등 나머지 대부분의 주는 태아가 모체에 의존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시점부터 임신중지를 금지하거나 아예 규제가 없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한편,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은 2일 오전 표결 끝에 법 시행 긴급 중지 요청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9명의 대법관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4명은 이 결정에 반대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 결정이 텍사스의 임신중지 금지법이 위헌이 아니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며 향후 관련 소송 가능성을 열어줬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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