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8일(현지시각) 주도한 주요 20여개국 장관급 화상회의 모습. 외교부 제공
7일 주요 각료 명단을 발표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과도정부에 대해 국제사회가 비판적 입장을 보이면서도 관여의 끈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정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날 독일 람스테인 미군 기지에서 탈레반 과도정부의 출범 이후 국제사회의 공조를 위해 한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 20여개국이 참여한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 블링컨 장관은 회의 뒤 탈레반 과도정부는 “그 행동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어떠한 합법성, 어떠한 지지도 자격이 되어야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사회로부터 합법적 지위를 인정받으려면 그에 걸맞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과도정부 구성을 봤을 때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한 필수적인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며 "포용성이라는 시험에 분명 충족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도 이날 회의가 탈레반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에 관한 “국제적 공조의 출발점”이라면서도 탈레반 과도정부가 여성이나 비탈레반 인사를 포함하지 않고, 미국이 테러 혐의로 수배한 인사를 내무장관에 임명한 점 등을 들어서,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국제사회는 탈레반이 여성 인권을 포함한 인권 옹호, 인도적 지원에 대한 접근 허용, 원하는 사람들의 출국 허용 등을 취하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국무부의 고위 관리는 탈레반의 오랜 동맹이던 파키스탄을 포함해 이번 회의에 참가한 국가들이 탈레반 과도정부 대처에 같은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그들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자신들의 독특한 역할에 대해 말했고, 그들은 우리가 어느 정도 관여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확실히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관리는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그 정부를 인정하거나 합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미국 등 서방 국가와 파키스탄 등이 탈레반을 당장 승인하진 않겠지만, 관여는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샤 마무드 쿠레시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트위터에서 “우리는 불안과 불안정으로 이끄는 아프간에서의 정치적 공백이 만들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며 “안정되고 평화로운 아프간은 더 많은 지역 및 국제적 관여를 통해서만 달성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탈레반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파이잘 빈 파르한 외무장관은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난 그 나라의 미래에 대한 아프간 국민들의 선택”에 대한 아프간인들의 지지를 확인했다면서, 임시정부의 구성이 “안보와 안정을 이루고, 폭력과 극단주의를 배격하고, 이런 열망과 함께 하는 밝은 미래를 구축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한 걸음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과거 파키스탄,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함께 탈레반 정권을 승인했던 국가로 지금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프간의 또다른 이웃국가이자 사우디의 숙적인 이란은 이번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국무부 관리는 아프간 문제를 두고 미국이 이란과 접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전통적으로 탈레반에 반대해 왔지만, 최근 들어 관계를 개선해왔다.
미국이 탈레반을 당장 승인하진 않을 것이란 방침은 백악관 발표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젠 사키 대변인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것은 과도정부”라면서도 “이 행정부의 어느 누구도, 대통령이나 국가안보팀의 어느 누구도 탈레반이 존경 받는 국제 공동체의 회원국 자격이 있다고 시사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런 것을 얻지 못했고, 우리도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전날 강경보수 인사 위주 인사에다가 여성은 한명도 포함되지 않은 임시정부 내각을 발표해,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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