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펜실베이니아주 생크스빌의 플라이트 93 메모리얼에서 열린 ‘9·11 테러 20주년 추모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뉴욕의 옛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와 워싱턴 인근 국방부(펜타곤), 생크스빌 등 세 곳의 9·11테러 현장을 모두 방문했다. 펜실베이니아/AP 연합뉴스
“9·11이 시작이었다. 그 전에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9·11 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테러리스트인 것처럼 바라본다.”
9·11테러는 미국에서 무슬림에 대한 혐오 정서를 증폭시켰다. 1999년 미국 시카고로 이민했다는 무슬림 여성 자네이보우 바는 이달 초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9.11테러 이후 달라진 자신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2018년 최초로 두 명의 무슬림 여성(일한 오마르, 라시다 틀라입)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할 정도로 무슬림의 사회 진출이 확대된 면도 있지만, 9·11테러 이후 부정적 시각이 강화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에이피>(AP) 통신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3%가 무슬림에 대한 비호감을 드러냈다. 퓨리서치센터가 2019년 여러 종교 신자들에 대한 호감도를 0~100 사이의 지표(높을수록 우호적)로 조사한 결과, 유대교 63, 가톨릭 60, 불교 57, 복음주의 기독교 56, 힌두교 55, 몰몬 51에 이어 무슬림은 49로 최하로 나타났다. 역시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서, 무슬림 가운데 종교 등의 이유로 차별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이는 2007년 40%, 2011년 43%, 2017년 48%로 갈수록 증가했다.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는 듯 행동한다’거나 ‘물리적 위협이나 공격을 받았다’는 응답이다.
무슬림을 폭력과 연관 짓는 인식도 꾸준히 증가했다. 이 기관이 9·11 테러 6개월 뒤인 2002년 3월 실시한 조사에서 ‘이슬람이 다른 종교에 비해 폭력을 조장할 것 같다’는 응답은 25%였다. 하지만 이는 2007년 45%, 2015년 46%, 2019년 48% 등에 이어 올해 8월 50%를 기록했다. 이런 인식의 정치적 양극화 역시 극심해지고 있다. 2002년 조사 때는 ‘이슬람이 다른 종교에 비해 폭력을 조장할 것 같다’는 응답에서 공화당원(32%)과 민주당원(23%)의 차이가 9%포인트였다. 그러나 이 격차는 2007년 20%포인트(공화당원 58%, 민주당원 38%), 2015년 37%포인트(공화당원 67%, 민주당원 30%) 등으로 늘었다. 올해 8월에는 공화당원 72%, 민주당원 32%로 간극이 무려 4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 기관의 2017년 조사에서는 ‘무슬림은 주류 미국 사회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대답이 공화당원은 68%, 민주당원은 37%였다.
미국에서 양극화하는 반이슬람 정서는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이 철수하며 함께 들어온 아프간 난민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미 정부는 이달 말까지 6만5000명, 내년 3만명 등 모두 9만5000명의 아프간인이 미국에 입국할 것으로 추정하고 지원 자금을 의회에 요청하는 등 대책을 짜고 있다. 일단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3일 공개한 여론조사를 보면, 보안 검색을 마친 아프간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68%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매체는 보수층의 반대 목소리를 지적하며 “이 같은 우호적 분위기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고 짚었다. 실제로 공화당의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는 지난달 아프간 철군 사태 때 양당 의원들과의 전화회의에서 “테러리스트들이 국경을 넘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폭스 뉴스>의 유명 진행자인 터커 칼슨은 최근 아프간 난민이 미국 문화를 희석하고 공화당에 해를 입힐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가 민주당 충성 투표자들이 될 것으로 여기는 난민들을 경합 선거구들에 밀어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장 주거와 일자리가 막막한 수만명의 아프간 난민들이 앞으로 겪을 정서적, 정치적 험로를 짐작할 수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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