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정상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모아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다.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나온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4개국 협의체 ‘쿼드’(Quad)의 첫 대면 정상회의를 열며 전선을 가다듬는 모습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3일 성명을 내어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백악관에서 첫 쿼드 정상회의를 연다. 바이든 행정부는 3월 화상으로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쿼드 격상을 매우 중시해왔다. 이번 회의 개최는 바이든 행정부가 21세기 도전 과제들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다자 협의체를 활용하는 것을 포함해 인도·태평양에 관여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의엔 바이든 대통령, 퇴임을 앞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 등이 참석한다. 사키 대변인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참여국 간 유대 심화 △코로나19·기후변화 대응과 신기술·사이버공간 협력 증진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촉진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의의 논의 주제는 지난 3월12일 이뤄진 첫 화상회의와 큰 틀에서 같다. 당시 쿼드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사실상 중국 견제를 의미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법치, 항행 및 영공 비행의 자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민주적 가치, 영토적 온전성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에 열리는 대면 정상회의는 시기적으로 6개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바이든 행정부가 20년 지속된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간 전쟁을 지난달 말 끝내고 대외정책의 초점을 중동에서 중국으로 옮기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직후 열린다는 점에서다. 미국은 중국을 ‘심각한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쿼드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는 핵심적 플랫폼으로 여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 철수 직후인 지난달 31일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러시아와 여러 전선의 도전을 다루고 있다”며 “새로운 도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선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90분간 이어진 전화회담에선 “경쟁이 충돌로 바뀌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한 두 국가의 책임”(백악관)에 대해 논의했으나, 관계 개선 돌파구나 구체적 협력 지점을 찾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회의에서 중국과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중국의 국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 구상에 대응하는 글로벌 인프라 투자 문제도 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미 고위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의는 아프간 철수 과정에서 손상된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과 위상을 재정비하면서 중국과의 본격적인 ‘전략 경쟁’에 대비해 핵심 동맹국·협력국들을 달래고 규합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빌 해거티 상원의원(공화당)은 트위터에 “아프간 철수 과정에서 드러난 바이든의 대실패는 인도의 이웃(중국)을 더 위험하게 만들었고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정당한 의문을 갖게 했다”며 “곧 쿼드 회의를 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우리는 동맹을 복구하고 새롭게 해야 한다. 이게 핵심”이라고 적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쿼드 정상회의에 앞서 진행하는 21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도 ‘미국이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12월9~10일 화상으로 여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 또한 동맹 규합, 중국 견제, 미국 리더십 강화를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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