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새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 창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다른 두 정상이 화상으로 참여한 가운데 하고 있다. 왼쪽 화면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오른쪽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15일(현지시각) 새로운 3각 안보 동맹체 ‘오커스’(AUKUS)를 창설하기로 하고,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지원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동맹들과 손잡고 중국 견제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를 화상으로 연결한 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모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인도태평양에서의 평화와 안정성 보장의 긴요함을 인식하고 있다”며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새로운 3각 동맹의 이름인 오커스는 호주·영국·미국의 영문 글자를 합친 것이다. 3국은 모두 영어를 사용하며 바다를 끼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은 우리 힘의 가장 큰 원천인 동맹들에 투자하는 것이고, 그들이 오늘과 내일의 위협에 더 잘 대처하도록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라는 지속적 이상과 공동 약속에 따라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외교, 안보, 국방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3국은 사이버, 인공지능, 양자기술, 해저 기술 등의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지원하는 것은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나온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조처다. 3국 정상은 이날 중국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경제, 군사, 기술 분야 등에서 중국의 확장 억제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미국은 옛 소련에 대응할 목적으로 1958년부터 영국하고만 핵잠수함 추진 기술을 공유해왔으나, 호주에게도 문을 열었다. 60여년 틀어쥐고 있던 핵 기술을 공유하면서까지 호주의 군사력을 대폭 증대시켜야 할 정도로 중국의 확장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뜻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기존의 재래식 잠수함에 견줘 잠항 시간이 길고 빠르고 조용하며, 적의 탐지도 어렵다.
미 정부 고위 관리는 기자들에게 “이는 호주가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역할을 해서 미국의 역량을 보강할 수 있게 해준다”며 “인도·태평양에서 평화와 안정성 유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은 앞으로 18개월 동안 호주에 기술·전략팀을 보내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위한 세부사항을 협의할 예정이다. 모리슨 총리는 핵추진 잠수함이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서 3국 협력으로 건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중국과 관계가 악화한 호주 입장에서도 군사력 증강을 뛰어넘는 중대한 전략적 결정이다. 호주는 미·일·인도·호주의 4자 협의체인 쿼드(Quad), 영어권 5개국인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이 참여한 기밀정보 공유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의 회원국으로, 이미 미국, 영국과 높은 수준의 협력 관계다. 이에 더해 미·영의 지원으로 향후 핵추진 잠수함을 갖추고 중국 근해를 누빌 수 있게 됐다.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아시아에서 신냉전에서 미국이 이길 것이라는 쪽에 호주가 내기를 걸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핵추진 잠수함 기술 지원은 핵확산을 부추긴다는 우려도 낳을 수 있다. 3국 정상은 이를 의식한 듯 “3국은 글로벌 비확산에서 리더십 유지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리슨 총리는 “호주는 핵무기 획득이나 민간용 핵능력 확립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자체적으로 고농축 연료를 생산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말해,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미국에서 수입해 사용할 것임을 내비쳤다. 미 정부 고위 관리도 “이 기술은 극도로 민감하다”며 “솔직히 이것은 많은 측면에서 우리 정책의 예외다. 오늘 이후 우리가 이걸 다시 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호주 외에 다른 나라에는 핵추진 잠수함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오커스 신설로 미국은 동맹 규합을 통한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견제망을 한층 더 다양화했다. 미국은 한국, 일본, 독일 등 동맹과의 양자 관계에 더해,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인도·태평양에서 미·일·인도·호주 4개국의 쿼드를 그물망으로 갖고 있다. 영어권 5개국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21일 뉴욕 유엔 총회 기조연설, 22일 백신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 강화에 나선다. 그는 24일에는 백악관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모리슨 호주 총리와 쿼드의 첫 대면 정상회의를 연다. 모두 동맹을 규합해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으로 볼 수 있다.
류펑위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국가 간 협력이 특정국가를 표적으로 한 배타적 체제를 구축하거나, 제3국의 이해를 해치는 쪽으로 이뤄져선 안된다”고 반발했다고 16일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그는 이어 “관련국들은 냉전적 사고와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떨쳐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 베이징/황준범 정인환 특파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