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가 유엔 대사로 지목한 수하일 샤힌. 그동안 외신들 앞에서 탈레반의 견해를 영어로 설명하는 외신 대변인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유엔에서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할 사람은 누구일까?
지난달 20년 만에 아프간 정권을 재장악한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국제사회에서 정당성 확보를 시도하는 가운데, 유엔에도 고민거리가 떨어졌다. 기존 아프간 정부가 유엔대사로 임명한 굴람 이삭자이와, 탈레반이 새로 임명한 모하메드 수하일 샤힌 중에 누구를 인정할 것이냐에 관한 문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20일 아프간 과도 정부의 아미르 칸 무타키 외교부 장관으로부터 기존 이삭자이 대사를 인정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받았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을 인용해 22일 보도했다.
무타키 장관은 서한에서,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축출됐고 전세계가 그를 더 이상 아프간의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가 임명한 이삭자이 대사는 더이상 아프간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탈레반 정부가 새로 유엔대사로 임명한 샤힌이 현재 뉴욕에서 진행중인 제76차 유엔총회에서 아프간 대표로 연설할 수 있게 할 것을 요청했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아프간 대표 연설은 마지막 날인 27일로 예정돼 있다. 샤힌은 미국과의 평화협상 때 탈레반의 대변인이었다.
그러나 샤힌은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 나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정 국가를 유엔 의석에 넣을 것인지는 9개국이 참여하는 자격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이 위원회는 일반적으로 11월에 열린다. 이 위원회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바하마, 부탄, 칠레, 나미비아, 시에라리온, 스웨덴이 참여한다. 미 국무부 고위 관리는 “위원회가 숙고할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해, 이번 유엔총회에서 샤힌이 연설하지 못할 것임을 내비쳤다.
탈레반 과도 정부에는 수반인 물라 모하마드 하산 아쿤드를 비롯해 유엔 제재 대상에 올라있는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어, 유엔이 이들을 정부로 인정하기 복잡한 상황이다. 유엔은 탈레반이 아프간을 1차 집권했던 1996~2001년에는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아프간 대통령을 국가수반으로 인정하고 유엔 의석을 제공했다.
앞서 지난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 군정 또한 문민정부 시절 임명된 초 모 툰 유엔대사 교체를 시도했다. 그러나 미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미국과 중국이 막후 협상을 통해 초 모 툰 대사를 유임시키되 이번 유엔총회 기간에는 연설하지 않도록 하기로 합의했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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