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쿤스텐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옌스 하닝의 ‘돈을 갖고 튀어라’라는 제목의 백지 그림. <가디언> 누리집 갈무리
덴마크의 한 화가가 현대 자본주의를 풍자한다며 ‘돈을 갖고 튀어라’라는 이름의 백지 그림을 내놓아, 미술관과 알력을 빚고 있다.
덴마크 북부에 자리한 쿤스텐현대미술관은 지난주 전시회에 참가할 화가 옌스 하닝(57)이 보낸 작품을 받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작품을 열어보니, 액자만 있는 백지였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은 ‘돈을 갖고 튀어라’였다.
개념 작가인 하닝은 권력과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왔다. 지난 2007년 ‘덴마크 평균소득’, 2011년 ‘오스트리아 평균소득’이라는 작품을 내놓아 유명해졌다. 두 작품은 덴마크의 화폐 크로네와 오스트리아의 화폐 유로를 캔버스에 붙여 두 나라의 소득을 상징했다.
예술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전시회를 열 예정이던 미술관은 하닝에게 이전의 두 작품을 다시 해석하는 작품을 의뢰했다. 미술관은 작품 제작에 필요한 화폐로 53만4천크로네, 작품 비용으로는 2만5천크로네를 지불했다. 달러로 계산하면 8만4천달러(약 1억원)이나 되는 큰 돈이었다.
그런데, 작품은 텅빈 캔버스뿐이었다. 라스 안데르손 미술관장은 “전시가 열리기 이틀 전에 하닝은 우리에게 이메일을 보내 ‘새 작품을 보냈다’고 했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어 황당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미술관은 하닝이 맺은 계약에 따라 전시회 일정이 끝나는 2022년 1월16일까지 하닝이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데르손 관장은 “하닝은 존경받는 예술가이다. 만약 돈을 돌려받지 못하면, 고소를 해야만 한다. 우리는 부자 미술관이 아니다. 그가 우리에게 돈을 돌려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하닝은 계약을 지킬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덴마크 국영 라디오와 회견에서 “그 작품은 내가 그들의 돈을 가져갔다는 것이다”며 “그건 절도가 아니다, 계약 위반이고, 계약 위반은 그 작품의 일부이다”고 말했다. 이어 “나처럼 열악한 작업환경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같을 일을 하라고 권고한다”며 “사람들이 형편없는 직장에서 돈을 받지 못한다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행동은 돈을 쥐고 도망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관 쪽은 일단 하닝의 텅빈 캔버스를 그대로 전시하기로 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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