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보호청이 미 전역의 산업 현장 12만 곳을 과불화화합물 배출 가능 지역으로 지정했다. 과불화화합물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현장으로 꼽히는 유전 시설. 뉴멕시코주/AP 연합뉴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미 전역의 12만개 산업 현장을 좀처럼 분해되지 않는 유해 화학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곳으로 진단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신문은 환경보호청이 최근 작성한 유해 현장 명단을 확인한 결과, 지난 7월 비영리 환경 단체인 ‘환경 워킹 그룹’(EWG)이 내놓은 산업 현장보다 4배 가량 많았다고 보도했다. 이런 진단 결과는, 환경에 노출되면 몇백년 이상 남아 있어 ‘영구 지속되는 화학물질’로 불리는 ‘과불화화합물’(PFC)에 사실상 미국 전역이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과불화화합물은 자연 상태에서는 생성되지 않는 5천 가지 이상의 인공 화학물질을 지칭하는 것이며, 분해 속도가 아주 느려 환경에 오래 잔류한다. 환경에 노출된 물질은 공기와 물을 통해 전파된다.
환경보호청이 과불화화합물 오염 가능 현장으로 지정한 곳들은 석유와 가스 관련 현장이 3만5223곳으로 가장 많았다. 폐기물 관리 시설, 금속 코팅 시설, 화학물질 생산 시설, 플라스틱 제조 시설, 공항, 소방 훈련 시설, 군 시설 등도 있었다. 유해 현장이 가장 많은 주는 2만1400여곳이 몰려 있는 콜로라도주로 꼽혔고, 1만3000곳이 지정된 캘리포니아주와 1만2000곳이 있는 오클라호마주도 유해 현장이 많은 주로 나타났다.
환경보호청은 이런 현장들을 “과불화화합물 처리 여지가 있는 산업 시설”이라고 표현하고, 대부분의 현장을 ‘가동 상태’로 분류했다. 또, 현재 가동되지 않고 있는 현장일지라도, 오염 문제는 지속된다고 덧붙였다.
공중보건 독성학자 데이비드 브라운은 유해 현장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화학물질에 노출될 것이 분명하며, 일부는 아주 높은 농도에 노출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불화화합물이 한번 유출되면 생체 내에 축적된다”며 이 때문에 실제 위험 현장은 환경보호청이 지정한 곳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가디언>은 환경보호청 자료를 자체 분석한 결과, 콜로라도주의 웰드 카운디 한 곳에만 과불화화합물 처리할 여지가 있는 시설이 8천곳이나 몰려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7900곳은 석유와 가스 관련 시설이었다. ‘사회적 책임을 위한 의사회’(PSR)는 지난 7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석유 및 가스 업체들이 석유·가스 추출 과정에서 과불화화합물을 사용한다는 증거를 제시한 바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화학업계의 조직인 ‘미국 화학 협회’(ACC)는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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