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부채 위기 놓인 저소득 국가
중,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등에
기반시설 지원하는 사업 진행
일대일로 사업 참여한 개도국
사업비 대부분 중 은행서 대출
40여개국은 GDP의 10% 빚져
중, 아시아·아프리카·유럽 등에
기반시설 지원하는 사업 진행
일대일로 사업 참여한 개도국
사업비 대부분 중 은행서 대출
40여개국은 GDP의 10% 빚져
전세계 금융 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은 중국 부동산 업체 헝다그룹의 부채와는 비교도 안 될 파급력을 지닌 또 하나의 중국발 ‘빚더미 공포’가 떠오르고 있다. 중국이 아시아·아프리카 등의 개발도상국에서 지난 20년 동안 추진한 사회기반시설 사업으로 인해 이들 나라가 떠안게 된 막대한 빚더미다. 이 부채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어려움에 빠진 개도국들을 심각한 외채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칼리지’ 소속 국제개발 연구팀인 ‘에이드데이터’는 2000~2017년 승인되어 올해까지 집행된 중국의 해외 지원 사업 1만3427건을 분석한 보고서를 최근 내놨다. 중국은 2013년 21세기형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유럽·아프리카 등을 아우르는 경제권을 구축한다는 ‘일대일로’ 사업을 공식 선언했지만, 그 이전부터 개도국에서 많은 개발 사업을 추진해왔다.
보고서는 18년 동안 중국이 전세계 165개국에서 추진한 사업이 8430억달러(약 995조원) 규모에 이르며, 그동안 공개되지 않던 ‘감춰진 국가 부채’ 3850억달러를 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40여개 중·저소득 국가의 경우, 중국에 진 빚이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에 이르고, 이 가운데 60%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빚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 책임자 브래드 파크스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감춰졌던 빚 3850억달러를 처음 확인했을 때 나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빚 대부분은 개도국 정부의 공식 회계에 포함되지 않지만, 직간접적인 형태로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 것”이라며 “이 때문에 공공 부채와 민간 부채의 구별이 모호해졌다”고 설명했다. 명목상 비정부 부문이 중국 정부나 금융기관에서 빌린 자금일지라도 결국 정부가 떠안을 위험이 있는데다가, 그 액수가 얼마인지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감춰진 부채의 대표 사례로 중국 쿤밍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간 고속철도 사업을 꼽았다. 이 사업에는 라오스의 한해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9억달러가 들어갔으며, 이 중 60%인 35억달러는 사업 주체인 ‘라오스-중국 철도’(LCRC)가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충당했다. 이 대출금은 이 회사가 수익을 내지 못할 경우 라오스 정부가 부담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게다가 라오스 정부는 이와 별도로 중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4억8천만달러를 빌려, 이 회사에 자본금으로 투자했다.
라오스-중국 철도 지분의 70%는 중국 국영기업 세곳이 갖고 있지만, 이들은 부채 미상환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법인이 구성됐다. 라오스 정부는 올해 영업에 들어간 이 회사가 6년째인 2027년까지는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낙관하지만, 주 수입원이 될 중국-타이 간 화물·여객 사업 전망이 불확실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런 식으로 그동안 감춰졌던 라오스의 부채는 국내총생산의 35%에 이른다. 투르크메니스탄(23%), 통가(21%), 카자흐스탄(16%), 브루나이(14%), 앙골라·모잠비크·나미비아(12%), 콩고민주공화국·파푸아뉴기니(11%)도 감춰진 부채의 부담이 큰 나라로 꼽혔다.
연구팀은 2000년 이후 중국의 국제개발 자금 제공액은 한해 평균 850억달러로, 미국(연평균 370억달러)의 2.3배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 가운데 순수 지원금은 전체의 3% 정도에 그치고 나머지 대부분은 금융기관이 제공한 대출금이다. 일대일로 등 중국의 해외 사업이 개도국 지원이라기보다는 상업 대출 성격이 훨씬 짙은 셈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확장해가면서 국유 상업은행들이 제공하는 자금 비중이 높아지며 개도국의 담보 제공 부담도 더 커졌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중국 은행들은 자금의 미회수 위험을 줄이려고 개도국의 미래 원자재 수출 계약 등을 담보로 잡는 일이 많고, 대출 금리도 6% 수준으로 상당히 높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전체 대출 자금 가운데 담보 대출 비중이 높은 나라로는 베네수엘라(92.5%), 페루(90.0%), 투르크메니스탄(88.6%), 적도기니(80.3%), 러시아(76.6%)가 꼽혔다.
중국은 해외 사업 초기에는 정부 기관에 주로 자금을 지원했으나 점차 국영기업이나 민간에 대한 대출로 방향을 전환해왔다. 이에 따라 국영기업, 은행, 특수목적법인, 합작기업, 민간기업 등에 제공된 자금이 전체의 70%에 이른다. 이런 대출 대상 변화는 정부 회계에 나타나지 않는 ‘감춰진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만든 요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많은 사업이 시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회 문제까지 일으켰다. 전체 사업의 35%가 부정부패, 노동기준 위반, 환경 파괴 논란을 부르거나 주민들의 항위 시위를 촉발해 사업 차질을 겪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연구팀은 “중국은 지난 20년 사이 자국을 저·중소득 국가들이 가장 먼저 의존할 투자자로 자리를 굳혔으나, 중국의 사업 추진 내역은 그동안 비밀의 장막에 감춰져 있었다”고 평했다.
개도국의 숨은 부채 부담이 쟁점으로 떠오른 가운데 미국이 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이달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함께 건전한 기반시설 사업을 목표로 한 ‘커넥팅 더 도츠’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개도국 개발 사업 등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비리를 척결하고 고품질의 기반시설 구축을 지원하는 걸 주목표로 한다. 이 계획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대안으로 미국·오스트레일리아·일본이 2019년 제안한 ‘블루 도트 네트워크’를 보완하는 성격도 띨 것이라고 미 국무부는 밝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외국 노동력에 의존하고 자원을 착취하며 빚더미에 앉게 되는 방식의 사업을 (개도국에) 추진하는 나라들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접근법을 옹호하기 위해 모였다”고 중국을 간접 겨냥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각국 정부, 민간기업, 시민사회 협력자들과 함께 고품질의 지속가능한 기반시설 구축 노력을 촉발하길 원하다”고 덧붙였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미국 등 서방의 상업 금융기관들이 아프리카 등의 저개발국을 위험한 투자 대상으로 분류해 기피함으로써 중국이 사업 영역을 확장할 여지를 열어줬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최근 움직임은 ‘건전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사업을 인증함으로써 주요 7개국(G7) 등의 투자를 촉진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앞서 지난 6월 주요 7개국은 2035년까지 개도국에 필요한 40조달러(약 4경7200조원) 규모의 투자에 협력하는 구상(B3W)을 밝힌 바 있다.
크리스 올던 영국 런던정경대학 교수(국제관계학)는 “블링컨 장관의 선언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이 지배하는 기반시설 투자 시장, 특히 아프리카 시장의 점유율을 회복하려는 공조 시도에 기반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세이푸데인 아뎀 일본 도시샤대학 교수(글로벌학)도 “미국의 시도는 중국의 정책과 움직임에 대한 대응”이라며 이런 발상은 2016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언급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아프리카 등을 놓고 대결하는 양상으로 사태가 전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배제하는 경쟁에 집착하지 않고 사업을 추진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데이비드 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교수(국제관계학)는 “주요 7개국과 중국의 계획은 그 성격에 차이가 있어서 굳이 서로를 배제하는 방식일 필요가 없다”며 “두 쪽이 서로 거리를 둘수록 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고속철도역에서 두 여성이 16일(현지시각) 새로 도입된 전동 열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국 쿤밍과 비엔티안을 잇는 이 철도 사업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으며, 라오스 정부는 이 과정에서 막대한 부채를 부담하게 됐다. 비엔티안/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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