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과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18일(현지시각)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한-미 북핵 수석대표 협의를 마친 뒤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기에 앞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정부가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고자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한-미가 종전선언의 문안까지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전선언에 대한 분명한 견해 표명을 유보해온 미국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힐지 주목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9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3국 북핵 수석대표 협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종전선언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계기로 상당히 유용하다는 데 한-미 사이 공감대가 있다”며 “그 공감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지난달 21일 앞뒤로 한-미가 집중 협의를 통해 종전선언에 대한 시각 차를 좁혀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과 미국의 북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최근 50일 동안 한국·미국·인도네시아를 오가며 5차례나 직접 만나 협의했다. 지난 12일에는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워싱턴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종전선언을 포함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방안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한-미가 종전선언의 일정한 문안을 놓고 협의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은 종전선언이 채택됐을 때 어떤 영향이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상당히 필요하다고 보고 있고, 그에 대해 내부적으로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미가 종전선언 문안을 협의한다는 사실은 미 정부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진지하게 대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다만 문안 검토가 곧 종전선언 공식 수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이르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할 경우, 한-미 연합사령부, 주한미군, 일본의 연합사 후방기지의 존립 문제 등 의도하지 않는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 정부가 주장하듯 비핵화 협상을 위한 ‘입구’로 별다른 반대급부 없이 종전선언에 합의할 경우 예상되는 반대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미 정부는 법률가들까지 동원해 종전선언 문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종전선언을 실질적 의미가 크지 않는 ‘정치적 선언’으로 여기는 한국 정부에 비해, 미국은 그것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는 물론 법적인 영향까지도 좀더 민감하게 따지는 모습이다.
정부 당국자는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뭐라고 확정적으로 말씀드리기엔 아직 시기가 빠르다”며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나가는 과정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그는 성 김 대표가 이번 주말 서울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 쪽과의 여러 협의 내용과 종전선언 등에 대한 미 정부 내부 논의 결과를 갖고 협의를 이어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북 인도적 지원과 관련해 이 당국자는 “실무적 협의가 거의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가 지난 수개월 동안 보건·방역·식수·위생 등의 인도적 대북 지원에 대해 협의했다면서 “다만 북한의 동의가 필요한 사업이기 때문에 언제 할지는 상황을 봐가면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부가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기 위해 종전선언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두 기둥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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