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홍콩의 한 거리에 홍콩기와 중국 오성홍기가 걸려 있다. 홍콩/AFP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시민사회의 고뇌를 담은 기사를 <한겨레>에 연재한다. 세 번째로 홍콩 국가보안법 도입 이후 바뀐 ‘쌍십절’(10월10일) 풍경이다.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지 1년이 넘었다. 홍콩 특별행정구 관료들은 이 법이 혼란스러운 홍콩을 정상 상태로 돌려놓았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제적으로 유명했던 자유의 도시에서, 자유가 사라졌다. 10월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에 중요한 달이다. 이달 1일은 중국공산당이 1949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개국을 선포한 날로 중국의 국경일이고, 10일은 1911년 우창에서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이 세워지는 신해혁명이 시작된 날로 대만의 국경일이다.
이전에는 홍콩의 친대만 인사들이 10월10일, 즉 ‘쌍십절’에 대만기인 ‘청천백일기’를 게양하고 축하했으나 지난해 홍콩 국가보안법 발효 이후 이 깃발은 홍콩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올해 들어 홍콩 보안국은 쌍십절 기념행사를 국가분열 행위와 연관 짓는 한층 높은 경고를 발령했고, 홍콩에 있는 대만 기관들은 처음으로 축하 행사를 열지 못했다. 대신 거리와 골목에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붉은 바다를 이루며 휘날리고 있다.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즈음부터, 해마다 쌍십절에 홍콩의 친대만 단체들은 청천백일기를 내걸고 축하행사를 크게 열었다. 과거 국민당 정부의 난민과 군인들이 정착해 ‘작은 대만’으로 불리던 탸오징링과 쑨원 선생이 홍콩에서 혁명운동을 할 때 머물렀던 툰먼구 청산홍루 등에 쑨원이 제창한 ‘중산복’(인민복)을 입은 이들이 모여, ‘중화민국찬가’를 불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런 축제의 풍경은 급격히 바뀌었다. 많은 보안 요원들이 청산홍루에서의 국기 게양식을 막았고, 청산홍루 근처의 지주들은 이곳이 사적 공간이라며, 시민들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 1968년 이래 거행해온 국기 게양식이 처음으로 중단됐다.
올해 풍경은 훨씬 삭막하다. 보안요원들이 일찍부터 현장에 바리케이드와 경계선을 설치하고, 평상시라면 통과할 수 있었던 지역의 출입을 금지했다. 홍콩 경찰들이 근처 경찰서로 대거 파견돼 시민들의 출입을 막고 조사했다.
홍콩 경찰의 강도 높은 대응엔 이유가 있다. 홍콩 경무처장을 지낸 덩빙창 홍콩 보안국장이 쌍십절을 보름여 앞두고 친중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쌍십절에 대만과 중국을 분리시키는 행동이나 타인을 선동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 이는 중대한 범죄 행위이며 단호하게 법 집행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단순히 쌍십절을 축하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덩 국장은 “국가를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없는데, 왜 이 날을 축하하려 하느냐”고 반문하며 “우리는 반드시 당신 마음속의 생각과 당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의 증거를 찾고, 증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국경일인 10일 대만 타이페이에서 한 시민이 청천백일기를 들고 있다. 타이페이/AP 연합뉴스
쌍십절을 축하하는 것은 정말 국가를 분열시키는 것일까? 쌍십절 축하 행사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지 않았고, 국가 안보에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1997년 9월 퉁치화 홍콩 행정장관은 ‘앞으로 홍콩에서 쌍십절을 계속 기념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안된다”는 대답을 하지 않았고, 홍콩의 대만 기관들은 쌍십절 행사를 열 수 있었다.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현재 주 홍콩 타이페이경제문화청이 쌍십절 행사를 중단하면서 다른 친대만 조직들도 행사를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실 홍콩에 시행된 ‘일국양제’는 원래 대만에 보여주려 한 것으로, 중국은 이를 양안(중국과 대만) 통일의 근거로 삼으려 했다. 이 때문에 과거 중국의 홍콩 정책은 훨씬 느슨했다. 그러나 중국이 홍콩에 대한 지배를 확고히 하고 양안 관계가 격화되면서 대만은 일국양제를 사실상 ‘거짓말’로 간주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홍콩을 ‘본보기’로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고, 홍콩의 자유는 크게 줄어들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최근 홍콩 정부가 국가분열과 동등하게 보는 쌍십절이 사실 중국 역사에서 매우 다층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우선 중화민국은 1912년 1월1일 성립했기 때문에 ‘쌍십절’은 중화민국의 개국일이 아니다. 이날은 1911년 우창에서 신해혁명이 시작된 날로, 중국 공산당도 현재 쌍십절을 앞두고 축하행사를 크게 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아래 가운데)이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9일 ‘신해혁명 110주년 대회’ 연설에서 “중국 공산당은 쑨원 혁명사업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가장 충성스러운 협력자이며 가장 충성스러운 후계자들”이라며, 중국공산당이 쑨원 선생과 신해혁명의 위대한 포부를 이어받겠다고 밝혔다. 렁춘잉 전 홍콩 행정장관도 올해 홍콩에서 친중 운동가들이 주최한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홍콩과 국내외의 젊은이들이 신해혁명 선배들의 유지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온라인 상에서 일부 홍콩 시민들은 쌍십절을 기념하는 사람들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을 하고 있느냐고 경찰을 비판했다.
애국주의가 확산된 홍콩에는 더이상 청천백일기가 보이지 않고, 오성홍기만 휘날리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충성과 애국을 요구하는 가운데, 중국 국경일이었던 지난 1일 홍콩 입법회 내 친중진영은 오성홍기를 통해 자신들의 애국심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많은 정부 건물에 크고 작은 오성홍기가 게양됐고, 홍콩 정부가 관리하는 일부 공공 주택의 복도와 외벽에도 많은 깃발이 걸렸다.
홍콩 교육국은 지난 11일 새 지침을 통해 홍콩의 초·중등학교와 특수학교에 내년 1월1일부터 등교일과 설날, 7·1 기념일, 국경절에 국기를 게양하고, 등교일은 매주 한 번씩 국기 게양식을 하고, 애국가를 부르도록 했다. 졸업식과 운동행사 때도 국기를 게양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유치원도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