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의 루스벨트 룸에서 화상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이번 회담은 지난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10개월 만에 처음 열리는 것이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미 동부시각) 첫 화상 정상회담에서 ‘전략적 안정’에 관한 논의 시작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미국이 중국을 핵 군축을 위한 대화 테이블에 끌어 앉히기 위해 첫발을 뗀다는 의미지만, 중국의 미온적 태도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 논의 결과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정세에 심오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6일(현지시각)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두 정상이 지도하고 안보·기술·외교에 걸쳐 권한을 부여받은 양쪽의 고위급 팀이 이끄는 전략적 안정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두 정상은 전략적 안정에 관한 대화를 진척시키기 시작하는 것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전략적 안정’은 핵과 같은 전략무기로 인한 핵전쟁 위협을 줄이는 것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핵 군비통제 대화에서 이 용어가 쓰인다.
이 발언은 진행자인 존 앨런 브루킹스연구소장이 중국의 핵탄두 증강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 등을 언급하면서 ‘군비통제 이슈가 더 커졌는데 미·중이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느냐’고 묻자 내놓은 답변이다. 설리번 보좌관이 ‘핵 군비통제’를 입에 올리진 않았으나 문답의 맥락상 두 정상이 핵을 포함한 군비통제 논의 시작을 검토하기로 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하지만 회담 결과를 전하는 두 나라 발표 자료엔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설리번 보좌관은 다만, 이번 대화가 냉전 시절부터 거슬러 오르는 ‘긴 역사’를 갖는 미-러 핵 군비통제와는 다르다는 취지로 “훨씬 더 역사가 깊고 더 무르익은 러시아와의 공식적 전략적 안정 대화와 똑같지는 않다. 미-중 관계에서는 그것의 성숙도가 낮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부터 그것을 진척시키기 위한 가장 생산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게 지금 우리의 임무”라고 했다. 중국과 핵 군축을 위한 매우 초보적인 논의를 시작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6일 미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열린 화상 세미나에서 전날 열린 미-중 정상회담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누리집 갈무리.
실제 미-러 두 나라는 핵 위협을 줄이기 위해 1987년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보유·제조·실험 등을 금지하는 중거리핵전력조약(INF), 1991년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감축하는 전략무기감축협정(스타트·START), 실전 배치 핵탄두 수를 1550개 이하로 줄이는 2010년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New START) 등을 체결한 경험이 있다. 뉴스타트 기한 종료를 앞두고 지난 2월 미-러는 5년 연장에 합의했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이 시작된 뒤 이 군비통제의 틀에 중국을 끌어넣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러 양국이 조약에 발이 묶인 틈을 타 중국이 다양한 사거리의 중거리미사일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 힘을 바탕으로 한국·일본·오키나와·괌 등에 전진 배치된 미군의 전력을 위협하며 규슈~오키나와~대만을 잇는 제1열도선 안으로 미 항모 등의 접근을 막고, 괌 등 제2열도선 안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저지한다는 ‘반접근/지역거부(A2/AD)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 변화를 인지한 미국은 2019년 8월 중거리핵전력조약에서 탈퇴한 뒤 미·중·러 3개국을 포괄하는 군축의 틀을 만들자고 주장해왔다. 그러는 한편, 자신들도 2023년부터 동아시아에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배치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7월 미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제출한 예산요망서를 분석해 “제1열도선을 따라 배치된 사정거리 500㎞ 이상의 지상발사형 미사일 망 구축에 향후 5년간 총 29억달러가 계상됐다”고 밝혔다. 이 미사일의 배치 후보지는 한반도, 일본 본토, 오키나와 등 난세이제도 등이 될 수밖에 없어, 계획이 추진되면 2016~2017년 ‘사드 사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더해 최근 미국에선 중국이 2030년까지 핵탄두를 1000개까지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지난여름 극초음속미사일 시험 이후 ‘스푸트니크의 순간’이란 비명이 쏟아지는 등 중국의 핵·미사일 전력 증강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상태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의도대로 핵 군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의 한 당국자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양쪽이 정상회담에서 그런 대화의 형식을 결정하지 않았다면서, 비정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트랙 투’ 대화가 하나의 선택지일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이 ‘만나서 얘기나 해보자’는 시 주석의 발언을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했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은 그동안 군축 틀에 들어오라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자신들의 핵전력은 “방어적 수요에 따라 핵 능력 개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어,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밝혀왔다. 실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분석을 보면, 중국의 핵탄두는 350개로, 미국(5550개), 러시아(6255개)보다 훨씬 적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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