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미국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총을 쏴 2명을 숨지게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카일 리튼하우스(18)가 지난 19일 커노샤 카운티 법정에서 무죄 평결을 선고받고 울음을 터뜨리려 하고 있다. 커노샤/AP 연합뉴스
인종차별 시위대에 총을 쏴서 2명을 숨지게 한 청년에 대한 무죄 평결로 미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인종 문제에 ‘총기 규제’와 ‘정당 방위’ 주장까지 뒤엉켜 충돌하면서 깊은 분열상이 거듭 드러난 것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각) 미 위스콘신주 커노샤 카운티 법원의 배심원단은 지난해 8월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총을 쏴 2명을 살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백인 청년 카일 리튼하우스(18)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지난해 5월 경찰관 무릎에 목을 짓눌려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그해 8월 커노샤에서 흑인인 제이콥 블레이크가 경찰의 총격으로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벌어지자 이 지역에서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더욱 거세졌다. 위스콘신주 옆의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리튼하우스는 친구가 불법으로 사 준 AR-15 소총을 들고 커노샤를 찾아가 시위대에 발포해, 두 명이 숨지고 한 명이 다쳤다. 피해자는 모두 백인이었다.
리튼하우스는 재판 과정에서 ‘시위대가 나를 쫓아와서 총을 빼앗아 가려고 했다’며, 총을 쏜 것은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당 방위’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총 든 리튼하우스가 타인을 위협하고 시위대의 과격 행위를 유발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 방위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법정에서 리튼하우스는 당시 상황을 진술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12명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은 26시간의 숙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리튼하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법학자들은 리튼하우스의 정당 방위 주장을 반박해 입증해내는 것은 검사의 책임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매우 힘든 싸움이었다고 지적한다. 세실리아 클링글 위스콘신대학 법학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검사들이) 정당 방위 주장에서 벗어나는 것은 진정 오르막 전투였다”고 말했다.
리튼하우스를 “백인우월주의자”라고 비판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평결 뒤 성명을 내어 “이 평결이 많은 미국인을 분노하고 우려하게 만들겠지만 우리는 배심원의 결정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이들이 법치에 부합하게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길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종정의와 총기규제를 옹호하는 시민들은 평결에 반발해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미니애폴리스 등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20일 시카고에서는 제시 잭슨 목사 주도로 수백명이 “리튼하우스는 유죄”라고 외치며 도심을 행진했다. 뉴욕에서는 시위대가 300여명이 “자본주의 법정에 정의는 없다” 등의 팻말을 들고 브루클린 다리를 점거한 채 행진했다. 포틀랜드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가게를 털고 경찰차 유리를 깨자 경찰이 폭동사태를 선언하기도 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이번 평결이 “자경단이 계속해서 그들의 힘을 주장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독려하는 분명한 신호”(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라고 비판한다. 백인 중심의 자경단이 정당 방위를 이유로 맘대로 총을 쏠 수 있게 하는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또한 사법 체계 안에 백인우월주의가 작동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총기 규제와 인종 정의에 반대하는 보수 진영은 이번 평결을 반겼다. 이들은 리튼하우스를 폭도에 맞서 법질서 수호에 나선 영웅이나 애국자로 묘사해왔다. 위스콘신주가 지역구인 론 존슨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카일 리튼하우스 재판에서 정의가 실현됐다”고 적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환영 성명을 내어 “우리는 처음부터 리튼하우스가 무죄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 재판은 급진 좌파의 마녀사냥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리튼하우스가 감옥에서 풀려나면서 낸 보석금 200만 달러도 대부분 지지자들의 후원금이었다.
미 언론은 이번 평결이 “양극화한 미국의 분열을 확대해 보여준다”(<워싱턴 포스트>)고 지적했다.
총기 규제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온라인에서 부품을 구매해 조립하는 이른바 ‘유령 총’을 당국의 통제 대상에 두도록 하는 등 몇가지 행정 조처를 했다. 그러나 입법을 필요로 하는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 강화, 반자동 화기 판매 제한 등은 공화당의 반대로 의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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