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민주주의 정상회의 폐막일에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국제 인권의 날’인 지난 10일(현지시각) 반인권 행위를 이유로 북한, 중국, 미얀마, 방글라데시의 10개 단체와 15명의 개인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바이든 정부 들어 북한에 대해 새로운 제재를 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경우 리영길 국방상과 중앙검찰소 등이 제재 대상이 됐다. 리 국방상은 한국의 경찰청장 격인 사회안전상 출신이다.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북한의 개인들은 강제 노동과 지속적인 감시, 인권 및 기본적 자유 행사에 심각한 제한을 받는다”며 “중앙검찰소와 사법 체계는 불공정한 재판으로 개인을 징벌하고, 재판은 때때로 악명높은 강제수용소행으로 귀결된다”고 밝혔다. 사회안전상 출신인 리 국방상도 같은 이유로 제재 대상에 올랐다고 밝혔다. 중앙검찰소와 리 국방상은 지난 3월 유럽연합(EU)에서도 반인권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
재무부는 지난 2016년 북한 방문 중 체제전복 혐의로 체포됐다가 2017년 혼수상태로 미국으로 송환된 뒤 숨진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북한의 불공정한 사법 체계 사례로 언급했다. 재무부는 “살아있었다면 올해 27살이 됐을 웜비어에 대한 북한의 처우와 사망은 비난받아야 한다”며 “북한 정부는 인권과 관련한 비참한 사건들에 대해 앞으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무부는 또 북한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을 중국에 불법 취업시켜 외화벌이에 활용한 ‘조선 4·26 아동영화촬영소’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제재 대상이 된 개인이나 단체는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과의 거래가 금지된다.
바이든 정부는 기존 대북 제재를 연장하기는 했어도 새로운 제재를 부과하지는 않아왔다. 그러나 ‘국제 인권의 날’이자 ‘민주주의 정상회의’ 폐막일에 맞춰 인권을 고리삼아 북한에 첫 제재 카드를 꺼냈다. 북한이 미국의 대화 제안에 응답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제재가 교착 상태에 추가 악재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미국은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면서도 선제적으로 대북 제재 완화를 하진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밖에 재무부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인권 유린과 관련된 일부 단체와 개인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지난 2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저항 시민을 탄압하고 있는 미얀마 군부 인사도 제재했다. 방글라데시의 군·경으로 이뤄진 신속행동부대(RAB)와 그 전·현 책임자들 또한 심각한 인권 탄압을 이유로 제재 명단에 올랐다.
한편, 미국·유엔 등의 고강도·장기 대북제재 지속과 북한 내 인도적 위기 심화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국제 세미나에서 나왔다. 제재 문제 전문가인 케빈 그레이 영국 서식스대 교수는 지난 10일 유튜브로 생중계된 ‘국제사회 대북제재 평가: 북한 경제 및 비핵화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세미나에서 “제재의 1차 목표는 대상국 행위의 변화인데 대북제재는 1차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인도적 지원을 저해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레이 교수는 “북한 체제에 (내부) 분열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제재를 가할 때 운용의 폭이 좁다”며 “(인도주의적 역효과에 비해) 제재의 효과가 제한적이며, 오히려 ‘결집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외교관 출신으로 (국제)경제 전문 변호사인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핵화라는) 대북제재 목표 달성을 위해 제재 강도를 높일지 (강도를 낮추는) 재조정을 할지 결단을 주도할 수 있는 국가는 현실적으로 미국뿐”이라고 짚었다. 김 교수는 이어 “(비핵화를 목표로 한) 제재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 미국이 일부 수단을 재조정할 수 있는 명분과 수단을 만들도록, 논리를 제공해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조언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이재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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