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판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22조 위반 혐의(체제전복)로 기소된 47명 중 한명인 샘 청 구의원이 3월1일 호송차를 타고 웨스트카오룽 법원에 도착하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핑궈일보> 퇴직 기자가 급변하는 홍콩 사회의 현주소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민사회의 고뇌를 담은 기사를 <한겨레>에 연재한다. 다섯 번째로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1년여 동안 홍콩사회의 변화된 모습이다.
2021년 말, 홍콩 거리에 더 이상 시위나 평화적인 집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홍콩 정부만 큰 목소리로 “혼란은 사라졌고 질서가 잡혔다”고 선전한다. 올해 홍콩에선 지난해 새로 제정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재판이 열리기 시작했고, 영향력 있는 민주 진영 단체들은 줄줄이 해산했다. 1년 연기돼 치러진 입법회 선거는 역대 최저 투표율로 친중파가 장악했다. 1년 새 홍콩인들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
지난해 6월30일 홍콩보안법이 정식 발효된 뒤 다음날 곧바로 10여명이 관련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든 게 문제가 됐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이 법으로 대략 155명이 체포됐다. 나흘에 1명 꼴이다. 심지어 15살의 미성년자가 체포되기도 했다.
홍콩에선 ‘살해 모의’와 같은 엄중한 혐의가 아니면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었지만, 홍콩보안법을 위반하면 거의 대부분 보석을 받지 못한다. 체포된 이들은 보석을 위해 상급 법원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많은 이들이 재판을 받지 않은 채 갇혀 있고, 심지어 1년 넘게 갇힌 이들도 있다.
홍콩보안법으로 재판 받는 이들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이는 지난해 7월1일 체포된 23살 청년 퉁잇킷이다. 그는 법안이 발효된 날, 오토바이를 탄 채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경찰이 친 방어선을 향해 돌진했다. 이 사건으로 크게 다친 경찰이 없고, 일부 목격자는 경찰이 갑자기 튀어나와 오토바이를 멈추게 하면서 사건이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퉁잇킷은 타인을 선동해 국가를 분열시키고 공포를 일으켰다는 두 가지 죄목으로 기소됐다.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는 혐의였다. 홍콩 정부 법률장관의 요구로 배심원단 없이 홍콩 행정장관이 지명한 3명의 판사가 재판을 진행했다. 이는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조처였다. 결국 퉁잇킷은 유죄가 확정돼 9년형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7월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 1호 사건으로 기소된 통잉킷이 지난 6일 재판을 받기 위해 호송차를 타고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홍콩/AP 연합뉴스
이 재판이 선례가 돼 이후 홍콩보안법으로 체포된 이들도 비슷한 재판을 받았다. 배심원단 없이 무기징역이 가능한 조건으로 진행되는 재판에서 피고들은 조금이라도 일찍 자유를 찾기 위해 유죄를 인정한다. 국가분열, 돈 세탁, 유인물을 통한 선동 혐의 등으로 기소된 19살의 학생조직 책임자 토니 청은 지난달 재판에서 돌연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그는 결국 3년7개월형을 받았다. 한 시민은 홍콩 독립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지난 10월말 징역 5년9개월형을 선고 받았다. 이 재판은 홍콩에 더 이상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홍콩보안법은 민주진영에 치명상을 입혔다. 홍콩 최대 언론 매체로 민주 진영을 지지하는 언론사가 문을 닫았고, 수많은 민주 진영 지도자들이 감옥에 갇혔다. 지난 1월6일 홍콩 경찰은 민주 진영 정치인 등 55명을 체포했다. 한 달 뒤 이 가운데 47명을 ‘국가정권 전복을 도모한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이 입법회 의원에 당선돼 재정예산안을 부결시켜 홍콩 행정장관의 사퇴를 이끌어 내려 했다는 것이다. 47명 중 30명은 수감된 채 재판을 받고 있고, 적지 않은 이들이 이미 정치조직에서 탈퇴하거나 정계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 6월 홍콩경찰은 수백명을 동원해 <핑궈일보>를 수색했고, 외국 세력과 함께 국가 안전에 위협을 도모한 혐의로 총편집인, 부사장, 주필 등 고위급 직원들을 체포했다. 전년도에 이뤄진 <핑궈일보> 창립자이자 홍콩 민주진영의 대표 인사인 지미 라이에 대한 탄압의 연장선상에 있다. 홍콩 정부는 <핑궈일보>의 자산을 동결하고, 주식 시장에 상장돼 있는 <핑궈일보>의 모회사 넥스트디지털 그룹을 청산하도록 명령했다. <핑궈일보>는 6월23일을 마지막으로 회사 운영을 중단했고, 넥스트디지털 그룹도 지나 15일 청산됐다. 1천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은 홍콩 정부의 개입에도 아직 봉급과 이직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이 6월24일치를 끝으로 폐간한 친민주 반중국 성향 <핑궈일보>를 사려고 가판대에 길게 줄을 선 가운데, 한 시민이 신문을 산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마지막 신문의 1면 제목은 ‘홍콩인들, 빗속에서 고통스러운 작별을 고하다. 우리는 <핑궈일보>를 지지한다’였다. 홍콩/AP 연합뉴스
<핑궈일보> 종간 사건은 홍콩 민주진영을 뒤흔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 일 이후 많은 민주진영 단체들이 친중국 매체들에 의해 ‘홍콩보안법을 위반했다’고 공격받았다. 이들 단체는 넥스트디지털 그룹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자산이 동결돼 정부 손에 넘어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국 자진 해산을 선택해야 했다. 그 가운데는 민주진영에서 가장 큰 노동 조직인 ‘홍콩직공회연맹’과 홍콩에서 가장 큰 교사조직인 ‘홍콩 교사노조’, 거의 50년 역사를 가진 ‘홍콩 직업교사 노조’, 1989년 베이징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 등이 포함돼 있다. 특히 지련회는 톈안먼 사건 기념일인 지난 6월4일 전날 밤 촛불집회를 열려고 했지만 홍콩 경찰은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행사를 불허했다. 8월부터 지련회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 돼 간부 일부가 현재 고발당하거나 수감돼 있다.
홍콩 당국 “질서 회복” 강조하지만…민주진영은 완전 퇴출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지난 7월초 홍콩보안법 1주년 행사에서 홍콩보안법이 홍콩에 혼란 대신 질서를 가져다준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홍콩보안법을 중국 고전 소설인 서유기에서 등장하는 ‘바다를 재기 위해 썼다는 자’(정해신침·定海神針)에 비유하면서 홍콩보안법이 ‘하나의 중국, 두 개의 체제’라는 일국양제를 완성하는데 기여한다고 말했다. 이 법은 사실상 중국이 만든 것인데, 홍콩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중대한 정책적 변화를 보여준다.
중국공산당은 홍콩보안법으로 홍콩 민주세력을 억누름과 동시에 전방위적인 ‘애국정책’을 함께 펼친다. 지난 3월 중국공산당은 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4차 회의에서 ‘홍콩선거제도 개선 결정’을 통해 1997년 홍콩 자치권 반환 이후 홍콩에 뿌리내린 정치 제도와 선거 방식을 뒤집었다. 선거에 출마하는 인사들은 모두 애국 기준을 통과해야 하고, 여기서 벗어날 경우 출마가 금지되거나 자격이 취소된다. 10만 명이 넘는 홍콩 정부의 공무원도 자신이 애국자임을 증명해야 한다. 국가안전에서 생기는 ‘구멍’을 메우려는 것이다.
단일 노동조합으론 홍콩 최대 규모인 ’홍콩직업교사노조’(PTU) 지도부가 8월10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해산 결정을 밝히고 있다. 홍콩/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9일 치러진 입법회 선거는 후보 대부분이 친중파 출신이었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의 투표 의사가 극도로 낮았다. 실제 투표율은 홍콩 자치권 반환 이래 가장 낮은 30.2%를 기록했다. 이는 홍콩 정부와 새 선거 시스템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만을 보여준다.
홍콩 정부는 또 지난해 말 공무원에게 ‘기본법’을 옹호하고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선서와 서명을 도입했고, 올해 5월에는 비공무원 출신 정부 직원들에게 한 단계 더 나아간 성명에 서명을 요구했다. 650명 이상의 공무원이 이를 거부해 퇴직을 요구 받았다.
홍콩의 유일한 보통선거였던 2019년 말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진영은 85% 이상의 의석을 획득했지만 현재는 20%, 약 60명만 남아있다. ‘애국자 정책’ 탓이다. 민주진영의 구의원들은 선서무효, 자진사퇴, 수감 등으로 직책을 잃었지만, 홍콩 정부는 민주 진영의 출마를 배제하기 위해 보궐 선거를 거부하고 있다.
홍콩 상황 담은 영화도 상영 못해…홍콩인들 짐싼다
‘소프트파워’로 불리는 문화사업도 감시의 대상이다.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은 홍콩영화는 ‘상영금지’ 문제에 직면해 있다. 2019년 송환법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해외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해도 홍콩에서는 상영할 수 없다. 그중 <리따웨이청>(理大围城), <입법회를 점령하라>(占领立法会), <시대혁명>, <흩날리는 꽃과 과일>(花果飘零) 등은 홍콩 내 상영과 배급이 금지됐다. <시대혁명>은 대만 금마장상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고, <흩날리는 꽃과 과일>은 금마장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또 노르웨이의 안데르스 해머 감독은 송환법 반대 운동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두 낫 스플릿>으로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최종 5편에 올랐지만 상영되지 않았다.
홍콩에서는 평범한 구호도 홍콩 독립의 상징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중 ‘홍콩이여, 힘내라’는 단어가 금지어가 됐다. 올해 홍콩 마라톤 대회에 이 단어를 몸에 새기고 나온 참가자들은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했고, 대회에 참가하기 전 이런 단어와 문장을 숨겨야 했다.
홍콩 정부는 홍콩의 미래를 강조하며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홍콩인들은 ‘이민’으로 화답하고 있다. 홍콩 정부 자료를 보면 2020년 중반에서 2021년 중반 사이 홍콩 주민의 순이민 인구는 8만9200명에 달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2%가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만, 미국, 일본을 이민의 목표로 삼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지난해 한 학교에서 평균 32명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뒀고, 이중 60%가 홍콩을 떠났다. 교사 이직도 크게 늘어 학교마다 평균 7.1명의 교사가 학교를 그만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