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수쉬케비치(가운데 아래) 우크라이나 패럴림픽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4일(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진행된 2022 베이징겨울패럴림픽 개막식에 선수단과 함께 입장하면서 주먹을 높이 쳐들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전쟁의 포화를 뚫고 천신만고 끝에 베이징 땅을 밟은 우크라이나 패럴림픽 선수단의 초반 기세가 매섭다. 2022 베이징겨울패럴림픽 3일차인 7일까지 우크라이나는 바이애슬론과 크로스컨트리에서 총 8개의 메달(금4·은3·동1)을 따냈다. 메달 색을 기준으로 개최국 중국에 이어 46개, 참가국 가운데 2위 성적이다. 은메달 한개가 전부였던 지난달 베이징겨울올림픽과는 딴판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명한 패럴림픽 강국이다. 2020 도쿄패럴림픽 6위(금24·은47·동27),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 6위(금7·은7·동8) 등 2004년 아테네 대회 이후 17년간 여름, 겨울 패럴림픽에서 6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소련 해체 후 독립해 1996년 애틀랜타 대회부터 출전하기 시작한 우크라이나가 그간 획득한 패럴림픽 메달은
584개(금176·은203·동205). 전세계 16번째로 높은 성적이며 러시아보다 83개(징계로 국가명 사용 못 한 러시아패럴림픽위원회 메달은 제외)가 많다.
우크라이나 패럴림픽의 빛나는 성취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발레리 수쉬케비치(68) 현 우크라이나 패럴림픽위원회 위원장이다. 어렸을 적 소아마비를 앓았던 그는 구 소련의 장애인 수영선수였다. 그의 대학 시절 소련은 공무원이 나서 대놓고
“장애인은 병원에 있어야지”라고 말하며 운동하는 장애인들을 막아설 정도로 차별이 횡행했고, 수쉬케비치는 학내 장애인 수영 모임을 조직해 항거하면서 길고 긴 개혁가의 길로 들어섰다.
발레리 수쉬케비치 우크라이나 패럴림픽위원회 위원장이 3일 베이징에 입국한 뒤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베이징/교도통신 연합뉴스
공산권이 무너지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1991년, 그는 패럴림픽위원회를 창립해 초대 위원장이 됐다. 이후 1990년대 내내 정치인 신분으로 ‘인바스포트(Inva Sport)’라고 불리는 장애인 스포츠 정책의 토대를 닦는 데 매진했다. 인바스포트는 우크라이나 24개 주 전역에 장애인 스포츠센터와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는 프로젝트다. 비영리단체(NGO) 연합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사업은 2003년부터
국가 예산을 지원받으며 공공제도로 정착했다. 이듬해 우크라이나는 아테네패럴림픽에서 금메달 24개를 따내며 6위를 기록, 빛나는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인바스포트는 전세계 스포츠인들이 찾아와 배워가는 모범 사례가 됐다. 하지만 전쟁은 이런 전통을 위협하고 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면서 유럽 최고의 장애인 운동선수 시설로 평가받던 이 지역 예프파토리야 훈련센터가 러시아에 넘어갔다. 전국에 분산된 센터들을 동원하며 패럴림픽 선수단의 동요를 최소화한 우크라이나는 2016 리우패럴림픽에서 메달 순위 종합 3위라는 최고 성적을 냈으나, 수쉬케비치 위원장은 당시 “전쟁이 아니었다면 더 잘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 후 6년이 흘렀고 전쟁은 다시 우크라이나의 현실이 됐다.
수쉬케비치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선수단 54명(선수 20명)을 이끌고 전쟁터가 된 조국을 빠져나와 지난 2일 베이징에 도착했다. 그는 “이동하는 데 나흘이 걸렸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며 “여기 오지 않는 게 더 쉬운 선택이었을 테지만 우리의 참가는 단순한 참가가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는 표시”라고 강조했다.
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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