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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우크라이나와 대만 위기는 연결된다…‘노’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이 중요”

등록 2022-03-09 04:59수정 2022-03-10 11:25

박민희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4일 교내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난 4일 교내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해 11월 현대중국학회에서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동시에 중국이 대만의 일부 섬을 점령하고자 나선다면 한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던졌다. 청중은 술렁였다. 국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상상하는 이가 거의 없던 시기였다. 백 교수는 그때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여기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통치 변화 ,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 반영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많은 이들이 이를 국제질서의 대변동으로 여기며 불안해한다. 그 질서는 무엇이며, 어떤 변동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국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오판하거나 제 역할을 못하면, 혼란과 전쟁이 전세계로 확산될 수 있다.

지난 4일 중앙대학교 연구실에서 한 3시간 넘는 인터뷰에서 백 교수는 지금의 상황은 “신냉전이 아니라, 20세기 질서의 수립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는 근본적인 위기 ”라고 진단했다. “동아시아 평화와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통일 움직임에 한국은 분명하게 ‘노 (N0)’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자유주의로 전세계적 각국의 국내 불평등과 불안정은 심해지지만, 긴밀하게 연결된 경제 네트워크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 러시아와 중국의 권위주의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백 교수는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변동, 중국 사회주의의 변화, 마르크스주의 등을 깊이 연구해온 사회학자이다.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 <생각하는 마르크스> 등을 썼고, 비판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의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러시아의 침공을 볼 때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하나는 고정된 냉전의 틀로 ‘신냉전’이라고 판단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떤 국가 성격을 고정불변의 실체처럼 이해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편에 섰는데, 지금은 왜 그 질서의 반대 쪽에 놓였는지 질문해야 한다. 지난 10년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브렉시트로 상징되는 유럽의 분열, 트럼프의 등장으로 나타난 미국 정치의 분열, 코로나 19 팬데믹, 그리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라는 조건 속에서 러시아가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했고, 이것은 중국의 변동과 연결되어 있다.”

―현재 상황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적절한가?

“100년 전 1차 세계대전 전후의 시기를 참조점으로 삼아야 한다. 1차 대전 시기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다섯 가지의 유사점과 한 가지 차이점이 보인다. 첫번째, 강대국의 지정학적 충돌이 러시아와의 국경 지대에서 벌어졌다. 두번째, 1차 대전이 종결되는 과정에서 스페인독감이란 팬데믹이 큰 영향을 끼쳤는데, 지금도 코로나 19팬데믹은 대변동과 맞물려서 진행 중이다. 세번째, 자유주의의 위기이다. 100년 전에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의 한계로 실업자가 넘쳐나고 식민지 경합이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지금 많은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과 관련되어 있다. 네번째, 파시즘의 등장이다. 1차 대전 당시 자유주의 위기에 대한 대응 중 하나가 파시즘이었다. 적과 우리의 이분법으로 혼란에 대처하려는 강력한 구심점을 매우 반동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냈다. 지금도 자유주의 위기는 포퓰리즘 또는 극우정치의 분출로 비슷하게 반복된다. 다섯번째는 전시 자본주의다. 1차대전에서는 금융과 무역이 단절되고 자유로운 시장질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시 자본주의를 경험했다. 지금은 코로나19가 일종의 전시 자본주의가 작동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1차대전과 지금의 대단히 중요한 차이점은 사회주의의 위상이다. 19세기 위기의 돌파 속에서 뉴딜과 함께 사회주의가 등장했다. 사회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제국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대안이었고, 러시아 혁명을 거쳐 중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지금 대단히 역설적이게도 사회주의 혁명의 양대 국가였던 러시아와 중국이 바로 위협의 핵심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사라지고, 사회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지닌 국가가 오히려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이 중요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질서가 흔들린다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이 변동의 성격은 무엇인가?

“러시아의 침공에 왜 이렇게 전지구적인 대응이 나타나는지 주목해야 한다. 주권 국가가 침공 당해서인가? 2차 대전 이후 전후 질서는 방어적 전쟁만 허용했지만 이는 1980년대 미국 네오콘의 등장과 함께 깨지기 시작했다. 레이건 행정부의 그라나다, 파나마 침공이 있었고 부시 행정부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지금과 같은 관심과 일치된 대응은 없었다. 지금은 미국과 유럽이 공조해 러시아에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고 포괄적인 금융 제재를 하고 있고, 다른 나라의 군사적 갈등에 개입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했던 독일, 핀란드, 스웨덴 같은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대서양 연합 전체가 공동으로 들고 일어났다.

왜 이렇게 되는지를 이해하려면 2차 대전이 종결되면서 어떤 질서를 탄생시켰는가를 봐야한다. 2차 대전을 종결한 ‘얄타체제’라고 부르는 전후 질서는 단순한 냉전이 아니다.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1945년 얄타회담을 통해 세운 전후 세계질서의 기본 구도는 미국·소련·영국에 중국을 더한 빅 4의 구도였다. 기본적으로 식민주의와 팽창주의에 반대하는 질서인데, 루즈벨트는 소련이 탈식민주의·반팽창주의라고 보고 핵심 동맹으로 끌어들였고, 식민주의 종결의 승인을 위해 영국을 끌어들였다. 전후 인도차이나를 관리하기 위해 중국의 장제스(나중에 마오쩌둥의 중국으로 대체)를 초대했다. 프랑스는 나중에 영국의 처칠이 끌어들였다. 이것이 지금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구도이다. 이들 사이의 직접적 충돌은 피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국제질서의 핵심이었는데,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보여주는 것은 20세기 질서의 수립자들인 이들 빅 4 내부에서 근본적인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으로 연동되어 중국과 러시아라는 두 축이 흔들리면 전후 세계의 기반인 유엔 질서 자체가 심각하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신냉전’ 아닌 20세기 질서 수립자들의 내부 위기
러시아·중국 전지구적 경제 네트워크에서 나갈 수 없지만
국내 통치 동요 막으려 권위주의 강화하며 ‘준동맹’ 형성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 등 등 연합국 정상들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흑해 연안 얄타에서 회담을 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 등 등 연합국 정상들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두고 흑해 연안 얄타에서 회담을 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왜 지금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가?

“19세기 자본주의 질서가 무너진 뒤 20세기 질서가 어떻게 재건되는가를 보면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자본주의 질서를 시장개입적 자유주의 형태로 전환해서 개별 국가 경제 단위에서 성장과 고용을 연동시키게 했고, 이와 더불어 국제질서가 적어도 유럽 내에서는 안정적인 평화 유지 구도 속에서 작동할 수 있어야 했다. 얄타체제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세력권(서유럽과의 완충지대)을 인정해주면서 브레튼우즈 체제에 끌어들이려 했다. 냉전이 발발하면서 소련과 중국은 여기서 상대적으로 떨어져서 지정학적으로 약간 고립된 상태가 되었지만, 소련도 얄타체제를 상당 부분 유지해 나갔다.

상대적으로 안정적 국제질서 하에서 민족국가별 복지체제의 모색이라는 이런 구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전지구적으로 동요가 굉장히 커졌다. 이에 따른 원심력을 막기 위한 1990년대 이후의 대응은 개별 국가별로 통합력을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금융을 매개로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네트워크의 통합력을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많은 국가들이 여기서 떨어져 나가서는 생존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개별 국가 안에서는 불평등이나 빈곤 문제가 심각해지고 국내 통치가 동요하면서 원심력이 커졌다.

구심력을 되살리려는 시도 중 하나는 지역 통합으로, 유럽연합의 등장이었다. 러시아와의 완충지대가 사라진 상태에서 러시아를 유럽으로 끌어당길 것이냐 아니면 배척할 것이냐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이것이 난제인 것은 러시아에도 양면성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19세기부터 지속적으로 유럽의 일원이 되고자 하면서도, 유럽에 편입되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한다. 지금의 유럽통합의 핵심은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을 만드는 ‘대독일’의 형성이고, 그 상태에서 러시아를 유럽으로 통합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러시아는 서유럽 세계와 석유와 천연가스를 매개로 경제적으로 통합성이 높아져 유럽에서 떨어져 나가지도 못한다. 러시아나 중국처럼 규모가 커서 지역통합에 완전히 들어가기 어려운 국가들이 경제적 이익이나 금융적 통합 때문에 전지구적 경제 ·금융 네트워크 외부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국내 정치의 원심력에 대응하기 위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는 경향이 발생한다. 이것이 러시아와 중국이 ‘준동맹 ’ 관계를 맺게 된 이유 중 하나다.”

2월4일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베이징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사진을 찍고 있다. 베이징/타스 연합뉴스
2월4일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베이징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 사진을 찍고 있다. 베이징/타스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대만 문제와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선 ‘시진핑 체제’의 등장을 이야기 해야한다. 우리가 과거에 알던 중국이 지금의 중국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시진핑 체제의 핵심은 ‘혈통론 집단의 세습권력’ 형성이다. 혁명 1세대 지도자의 자제들, 즉 세습된 엘리트 집단이 시진핑의 등장과 더불어 거대한 2세대 통치세력을 형성했다. 이것이 바로 시진핑 1인 권력이 아니라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공산당 영도 세력이고, 이들은 항상 시진핑 같은 인물을 배출할 수 있다. 이 세력의 중요성이 커진 이유를 알려면 중국 개혁개방의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은 세계 시장에 편입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해 중국 관료 자본주의가 이득을 얻어가는 과정이었다. 중국은 세계 표준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따라갔고 상당히 내부화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30년 동안 작동하면서, 당의 통제력은 이완되고 당이 이익집단화되어 가는 경향이 발생했다. 이에 대응해 혈통론 세대의 집단 권력이 형성되어, 관료적이고 제도적인 통치, 기술에 의한 국가자본주의적 지배를 굉장히 견고하게 수립해 나간다. 탄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통치를 한다. 문제는 이런 통치 아래에서 공개적으로 이견을 제기하기 매우 어려워지고, 내부 토론 과정은 은폐된다. 개혁개방의 기본 특징인 지방의 주도성이 사라지고 리스크가 중앙으로 과도하게 집중되면서 모든 책임은 중앙에 쏠리게 되고, 중요한 정세에 대해 일단 결단을 하면 되돌리기가 어려워진다. 중화 민족주의와 결합한 사회 관리 정책으로 내적 불만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시진핑 체제에서 대만에 대한 통일 문제가 왜 이토록 중요해졌는가?

“다당제 하에서라면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상이한 정치집단 사이에 떠넘기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중국의 일당제 하에서 지금까지는 문제를 중앙과 지방 관계를 통해 회피할 수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지방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지방의 주도권을 제거한 상태에서 모든 리스크도 중앙에 집중되었고, 이것이 뉴노멀 하의 ‘시진핑 신시대 사상’으로 총괄되었다. 시진핑은 문제 해결의 돌파력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고, 이 점이 대만 위기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러시아가 외부의 방어벽으로 여기는 지역에 대한 구소련 시기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데 비해, 중국은 ‘영토 보전’을 강조하고 외부의 모든 개입에 대한 차단을 매우 중시한다. 잠재적 포위의 가능성도 돌파해야 한다. 따라서, 신장, 티베트, 홍콩이 중요해졌고, 이제 남은 문제는 대만이다. 대만 통일은 표면적으로는 ‘미뤄진 통일 ’을 완수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내부의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 ·군사적 드라이브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왜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의 영도가 타당한가’를 보여주기 위해, ‘세계 최강 국가’ ‘위협받지 않는 국가’의 목표가 중시되면서, 전략적으로 대만이 매우 중요해졌다. 이것이 ‘중국몽’과 함께 제시된 ‘강군몽’의 배경이다 .

후진타오 시기까지는 세계를 향해 우호적 제스처를 취하고 ‘도광양회 ’(능력을 감추고 힘을 기름)를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의 몸집이 커졌다. 중국의 의도가 무엇이든 달라진 위상 때문에 중국이 위협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요한 충돌 지점이 생겨났는데 그것이 대만 문제다. 대만 문제에 대한 공언을 이행하지 못하면 10년 안에 통치성의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제 ‘2035년까지 대만 문제를 해결하고, 2050년까지 어느 나라에도 지지 않는 군사력을 지닌 세계 최강 국가가 돼야 한다’는 일정표가 등장했다. 이 계획이 있을 때만 나머지 모든 문제가 해결 가능한 상태로 이미 드라이브가 걸려 있고, 되돌리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것을 중국 홀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반미 동맹’을 강화하려 할 것인데,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러시아와 북한이 중요하고,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로 이를 지탱하는 구조다.”

‘시진핑 체제’ 타당성 보여주는 데 대만 통일·강군몽 핵심
동아시아 질서 뒤흔들 ‘대만 위기’ 막으려면 한국 역할 관건
국제질서 변동 제대로 읽어낼 ‘분석의 외교’로 주체적 대응을

―지금 푸틴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고, 중국 국내에 반전 여론도 있지만, 중국이 러시아와 관계를 약화시킬 가능성은 없다는 뜻인가?

“어느 정도는 중국이 러시아를 협상 무대에 올리려고 하는 제스처는 취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시진핑이 당장 대만을 점령할 생각은 없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올해 가을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해야 하고, 대만은 향후 10년에 걸쳐 해결할 문제이다. 중국은 러시아를 바둑판의 돌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북한과도 그런 관계를 계속해 갈 것이다.

지금 중국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만과 관련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이다. 첫번째는 국제은행결제망(SWIFT) 통제처럼 미국 등의 금융 제재가 예상보다 굉장히 강하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외환보유고와 금 보유를 늘리면 제재가 들어와도 일정 기간 버틸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오판이었다. 외환보유고는 절반 이상 미국과 서유럽의 국채를 사는 데 미국이 그것을 동결하는 순간 쓸 수 없는 자산이 되었다. 또 금을 팔려해도 달러로 금을 살 수 있는 나라들은 이미 금융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두번째는 개방 경제의 취약성과 강점인데 이건 양날의 칼이다. 러시아는 에너지밖에 없지만, 중국은 글로벌 분업과 로지스틱스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외부의 수요가 줄어드는 ‘전시 자본주의 ’와 같은 상태에서 중국은 내수에 의존해 버텼고, 전략적 수입 물자들을 상당부분 국산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반도체가 10년 안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가 중요하다. 세번째는 길게 끌면 안 된다는 교훈이므로 1~2주 안에 결판을 볼 수 있는 군사적 준비가 중요해질 것이다. 다음은 내부 동요가 안 되게 하는 것이다. 여론은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고, 군과 민간기업가들에 대한 당의 통제도 강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세계 정치에서 고립되는 문제다. 유엔 표결에서 러시아를 지지한 나라가 4개국밖에 안 된다. 그런데 중국은 적어도 3분의 1 이상이 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한국이 기권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장기적인 플랜을 세울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타국의 영토를 침범한 것이지만, 중국은 ‘대만 문제는 내정’이라고 주장하는 점도 중요하다. 중국이 앞으로 10년 동안 준비한 다음 대만을 무력통일하려 시도한다면 국제사회가 지금처럼 대응할 수 있을까. 중국의 위상이 러시아보다 훨씬 크고, 러시아가 유럽 내에서 고립되는 것과 달리 동아시아 전체가 중국화되고 있고, 일본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일본과 한국은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중국이 만약 대만을 무력통일하는 경우 동아시아 질서는 완전히 변하게 된다. 대만 위협을 묵인한다면, 그 다음 동아시아 질서는 우리가 알던 것과 매우 다른, 위협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쇠퇴했고 중국식 모델이 대안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 스스로가 자신들의 입장을 ‘수세적 예외주의’로 정한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스스로 보편성을 포기했다는 말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중국은 ‘서구식 보편을 대체하는 새로운 보편을 중국이 만들고 있다’고 보여주려 했다. 그런데 이번 2022년 올림픽 전후 시기 중국은 ‘우리는 예외이고 우리 식대로 가니까 건들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추격자 국가가 기존 질서에 도전할 때 기존 질서를 파괴할 뿐인가, 아니면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중국은 대안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중화주의와 ‘애국자 통치’를 강조하는 것은 중국식 모델을 다른 나라가 따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다. 이 상황을 1933년의 독일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은 과한 것일까? 나치가 집권한 1933년 무렵이면 서구의 어떤 나라도 독일을 모델로 따르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치는 1933년에서 1938년까지 대불황을 나름대로 극복하고 실업 문제를 해결하면서, 루르 공업 지역을 중심으로 유럽과 경제통합을 강화시켰다. 1938년 뮌헨협정은 이런 경제통합성을 배경으로, 독일의 체코와 오스트리아 합병이라는 레벤스라움 (생활권 )의 요구를 ‘독일의 내정 문제’로 인정한 프랑스와 영국의 태도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1933년의 독일처럼 지금의 중국도 내부에서 점점 더 어떤 이견도 용인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동아시아와 유럽과의 경제통합은 더욱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완전히 시장 자유주의적 경제를 운영하면서, ‘대만 문제만 해결하겠다’고 한다. 19세기 말 일본의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주권선과 이익선을 주장하면서 생존과 팽창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적이 있다. 중국이 대만까지를 제 1도련선, 괌 ·사이판까지를 제 2도련선이라고 설정한 것이 역사적 전례가 없는 것이 아니다.”

―중국 내부에 여러 경제, 사회적 문제가 있다. 당내 이견이나 비판적 여론을 고려해 중국 스스로 방향을 바꾸게 될 가능성은 없는가?

“향후 10년간은 별로 없을 것이다. 중국이 문제를 가장 잘 돌파해 나가고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코로나 19에 비교적 잘 대응했다. 미국과도 싸움이 붙었지만 잘 버티고 있다. ‘공동부유’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는 것은 아니지만, 감찰기구를 강화해 부패관리, 졸부들을 확실히 처벌하는 데 대한 여론의 지지도 강하다. 여러가지 문제도 나타나고 있지만, 외부와의 대결을 통해 내부를 단합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시진핑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내부의 이견도 계속 정리되어 가고 당 내부의 이견도 표출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시진핑에게 1인 권력을 집중시켰기 때문에, 시진핑이 적어도 앞으로 5년은 책임지고 분명한 업적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 물론 대만 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향후 정책이 100% 결정된 상태는 아니고, 여러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래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가 중요하다. 중국이 한국은 어차피 변수가 아니라고 볼지, 한국 변수가 매우 중요하다고 볼지가 중국공산당이 이후 동아시아 정세를 판단하고 결정해 가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가 중국에 대한 외교에서 공동의 입장을 정립해 대응해야 하고, 이념적 좌표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프 북서쪽 이르핀에서 주민들이 러시아 군의 공격을 피해 대피하고 있다. 이르핀/AFP 연합뉴스
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프 북서쪽 이르핀에서 주민들이 러시아 군의 공격을 피해 대피하고 있다. 이르핀/AFP 연합뉴스

―강대국 세력의 충돌이 벌어지는 지정학적 위치라는 점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동병상련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 . 급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한국의 외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한국은 국제질서에 주체적으로 대응한 적이 없고 제도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한국에는 ‘분석의 외교’가 없고 ‘의지의 외교’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역사를 일종의 불변의 틀로 보고 있다. 일본은 언제나 똑같은 일본, 중국은 똑같은 중국, 북한도 불변의 북한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러시아와 영국은 19세기에 80년 동안 적대국으로 크림전쟁처럼 전면 전쟁까지 나아갔지만 20세기 두번의 세계대전에서 같이 연합국에 속할 수 있었다는 역사를 교훈 삼아야 한다.

연합을 할 때는 어떤 이념을 기본으로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 국내의 이념 지향도 혼란스럽고 국제적 질서에 대해서도 혼동하고 있다. 한국은 사상적으로 자유주의 사상가도 없고 사상 논쟁도 없는데 자유주의 제도는 매우 잘 작동하는 기묘한 국가이다. 자유주의 제도를 스스로 설계해서 만든 것이 아니어서, 문제가 생기면 해체해서 수리하려는 노력에 곤란을 겪는다. 자유주의와 포퓰리즘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텐데, 포퓰리스트는 항상 ‘누구냐’를 묻는다. 누가 권력을 잡고 있는가, 누가 적이냐 좋은 편이냐. 반면 자유주의자는 누가 권력을 잡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제도가 등장했고 그 제도가 유효하게 작동하느냐만 묻는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외교를 선과 악의 구도로 보고, 현실주의로 보지 않는다. 또 외교를 국내정치를 풀어가는 사상적 기초에서 풀어가지도 않고 다만 전문 외교관만의 일로만 여기는 경향이 크다.”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이고 한국의 새 정부가 출범한다. 지난 30년 동안 한-중 관계의 두 축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과 협력해야 하고, 한국 수출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 사활이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변해야 하나?

“변해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은 이 흐름을 타고 가는 게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서, 한국이 제대로 목소리도 못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태로 가면 남북 협상도 의미가 없다. 한국이 새로운 질서에서 협상 카드를 가지려면 어떤 구도에서 가능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고 냉철하게 외교를 하면서도,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줄여가며 다변화도 해야 하고, 필요한 부분에서는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일단은 중국이 군사적 방향으로 더 움직이지 않도록 제어하는 게 한국의 역할이다. 동아시아 질서에서 중국이 만약 대만 위기로 가는 상황이 되면 미국과 일본의 입장은 정리되어 있고, 북한도 입장을 정했다.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가 앞으로 10년 동안 대단히 중요해진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할 것인가, 질서의 거대한 위기로 가게 될까’에 대해 중국은 적어도 한국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계속 물어보며 가게 된다. 한국을 무시하고 가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한·미·일이 연결되면 중국이 마치 지금의 러시아처럼 고립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 10위의 경제인 한국이 중국의 무력 사용을 지지하거나 묵인하는 방향으로 가면, 상황은 힘들어진다. 중국이 만약 향후 10년 동안 대만 위기로 가는 길을 걷는다고 하면, 한국은 ‘노 (NO)’라고 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나가야 된다. 대만 문제의 첫 단추인 홍콩 문제가 벌어졌을 때 한국은 이미 한번 묵인을 했다.”

―어떤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 가야 할까?

“지금 자유주의적 질서가 동요하고 있는 건 맞다. 그런데 러시아와 중국은 기존 자유주의 질서의 폐기로 나가려 할 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 러시아와 중국의 혁명은 단순한 자유주의 질서의 폐기가 아니었다. 자유주의 질서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지향 하에 사회주의적 질문을 제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핵심적 이유는 반전평화주의적 국제주의에 있었다. 중국공산당도 2차 대전에서 반파시즘에 섰었고, 미국 루즈벨트 정부는 장제스 국민당의 독재보다 옌안공산당의 연립정부 입장을 더 지지했던 시기도 있었다. 사회주의는 왜 몰락했는가. 소련은 출발점인 반전평화주의를 버리고 과도한 군사주의로 나아갔다가 몰락했다. 중국공산당도 옌안에서는 연립 정부 하의 인민민주주의 구도를 지향했지만 건국 이후 시진핑 체제까지 오는 긴 과정에서 민주를 폐기했다. 서구가 보여주는 자유주의의 위선도 문제이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보여주는 자유주의의 폐기 또한 지구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반미 ’를 위해 자유주의의 미달이나 폐기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 유산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세기 대중운동은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를 질문으로 제기했지 ‘야만적 사회주의’를 선택지로 내세운 적은 없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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