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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만큼 두려운 기후위기…‘게임체인저’가 필요하다

등록 2022-03-19 11:49수정 2022-03-19 13:45

[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 _ 우크라 전쟁과 앞으로의 세계

우크라 전쟁 여파 군비경쟁 심화
‘군사 활동도 기후악당’ 인식해야
기후위기도 ‘핵무기급 위험’ 예고
재앙 맞서 지구시민이 움직일 때
지난 13일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전쟁 반대”, “평화”라고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지난 13일 독일 베를린에서 시민들이 “전쟁 반대”, “평화”라고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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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선 날마다 수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신냉전의 문턱에 있던 세계엔 냉전 시대에 버금가는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세계 각국의 군비증강 열기도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앞으로의 세계는 어디로 가게 될까? 불안과 우려가 증폭되는 지구촌의 미래를 달리 설계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는 존재할까?

공멸의 두려움이 종식시킨 ‘냉전’

돌이켜보면 2차 세계대전 말엽부터 싹트기 시작한 냉전 시대의 ‘게임 체인저’는 핵무기였다. 전시 연합국들로 파시즘을 격퇴하기 위해 손을 잡았던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의 등장을 계기로 잡았던 손을 놓고는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했다. 이를 날카롭게 포착한 사람이 바로 조지 오웰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두 달 뒤에 쓴 칼럼에서 “우리는 몇 초 만에 수백만의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무기를 보유한 두세 개의 괴물과 같은 슈퍼파워 국가들이 세계를 분단시키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줄어들겠지만, 영원히 ‘평화가 없는 평화’의 상태, 즉 ‘냉전’(cold war)을 그 대가로 지불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이후 인류의 역사는 오웰의 경고대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매우 역설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핵무기가 다른 의미의 ‘게임 체인저’가 되면서 미-소 데탕트 및 냉전 종식에 기여한 것이다. 서로 으르렁대던 미국과 소련이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한 계기는 3차 세계대전의 문턱까지 갔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나와 동맹국의 안보를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핵무기가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는 핵무기 확산 방지와 핵전쟁 예방을 위한 협력에 나섰다.

1972년에 시작된 미-소 간의 1차 데탕트도 핵전쟁의 공포가 낳은 산물이었다. 1960년대 중반 들어 미국과 소련은 핵 군비 경쟁뿐만 아니라 핵미사일을 막기 위한 방어용 무기 경쟁에도 불을 댕겼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바로 공멸의 위험이었다. 그래서 양측은 핵무기 통제뿐만 아니라 방어용 무기인 미사일방어체제(MD) 통제에도 나섰다. 전략무기제한협정(SALT)과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은 그 산물이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 천명으로 종말을 고할 위기에 처했던 데탕트를 되살리는 과정에서도 핵무기는 중심에 있었다. 1980년대 미·소의 핵무기 보유량은 둘이 합쳐 7만개에 이르렀다. 핵 군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핵겨울’(nuclear winter)이라는 말이 지구촌을 배회했고 이 공포를 물리치고자 지구촌 곳곳에서 반핵운동의 열기도 뜨거워졌다. 그러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핵무기 감축에 나섰고 핵전쟁 가능성의 구조적인 원인인 냉전을 종식하자고 의기투합했다. 핵무기가 품고 있는 공멸의 두려움이 냉전 종식에 기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과 신냉전에 진입한 오늘날의 세계를 구하기 위한 ‘게임 체인저’는 있을까? 저마다 느낌과 대책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지구촌 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는 존재론적 위협은 분명 존재한다. 바로 기후위기이다. 기후위기가 지구안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경고는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데에 군사 활동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앞선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전쟁을 준비하고 대비하기 위해 동원된 군사력, 그 군사력이 실제로 사용되고 있는 전쟁, 전쟁 이후 복구 과정에서 내뿜게 되는 탄소량은 어마어마하다. 참고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배출한 탄소량은 2억5700만대의 자동차가 1년 동안 배출한 탄소량과 비슷하다.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목도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은 ‘힘만이 살길’이라며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군사 활동을 늘릴수록 그 국가가 속해 있는 지구의 안보는 갈수록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지구 시민’이 나서야 할 때

핵무기가 절대안보와 패권을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은 냉전의 등장과 격화의 주된 원인이었다. 그 핵무기가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자각’은 냉전 종식의 주된 동력이었다. 이제는 전쟁과 군비경쟁이 그 자체로도 위험할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이를 자각할 수 있어야만 신냉전과 기후위기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는 지구를 살릴 수 있다.

핵무기와 기후위기가 절멸의 위험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지만, 매우 중요한 차이점도 있다. 핵전쟁의 공포는 통제할 수도 억제할 수도 있다. 한때 7만개에 달했던 핵무기가 오늘날에는 1만2천개 수준으로 줄어든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티핑 포인트’(급변점)를 지나면 돌이킬 수 없다. 지구의 연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섭씨 1.5도가 오르면 지구의 재앙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군사 활동 축소를 통한 기후위기 대처와 정치군사적 긴장완화 사이에 선순환을 도모하자”는 ‘그린 데탕트’를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과 바람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전 세계적인 군비경쟁의 격화를 보면서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전쟁과 신냉전의 시대에 군축을 하자는 주장도, 지구촌의 진짜 위기는 기후위기라는 호소도 한가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 시민이 나서야 한다. 기실 핵무기를 ‘금기의 무기’로 만들고 냉전을 촉발·격화시킨 무기를 냉전을 종식시킨 무기로 둔갑시킨 데에는 시민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핵무기를 만든 핵물리학자들이 반핵 투사로 변신했고, 의사와 과학자들이 핵실험과 핵무기 사용이 얼마나 인체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밝혀냈으며, 평범한 시민들이 핵전쟁의 공포에 맞서 세계 주요 도시를 반핵의 물결로 넘실거리게 만들었다. 이러한 시민의 힘이 국가 지도자들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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