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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새벽 4시25분, 우크라 난민 줄리아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등록 2022-03-26 07:29수정 2022-03-26 12:55

[한겨레S] 커버스토리
우크라 접경지 14일간 취재기
1. 6일(이하 현지시각) 폴란드 메디카 국경검문소 쉼터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폴란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 6일(이하 현지시각) 폴란드 메디카 국경검문소 쉼터에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추위를 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폴란드/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달을 넘었다. 김혜윤·노지원 <한겨레> 기자는 지난 5일 우크라이나 접경지인 폴란드로 급파돼 전쟁 이후 피란민이 된 이들의 삶을 취재하고 돌아왔다.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으로 입국한 뒤 열차와 차량으로 접경지인 코르초바, 메디카, 프셰미실 등으로 이동해 전쟁터가 된 고향을 등지고 가족·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진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만났다. 난민 쉼터와 피란민 열차 동행취재, 마르친 오치에파 폴란드 국방차관 인터뷰 등으로 전쟁의 상처를 생생하게 전한 뒤 19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두 기자에게 14일간의 취재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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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25분. 휴대전화 소리에 잠이 깼다. 줄리아가 메시지를 보냈다. 줄리아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폴란드로 넘어온 피란민이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내게 자기 나라 대통령 연설 장면이 담긴 유튜브 영상 링크를 보냈다. “신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란 메시지와 함께.

지난 9일 새벽(현지시각)이었다. 우크라이나 침공 뒤 14일째 되던 날이었다. 얼른 번역 앱을 켰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줄리아에게 우크라이나 말로 번역한 답 문자를 보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최근에 잠을 거의 못 자요.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서요.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침 맞는 게 두려운 우크라 피란민들, 밤새 고향 소식 ‘새로고침’에 뜬눈

비극 앞에서 차마 못한 질문

내가 줄리아를 처음 만난 건 8일 오후 폴란드 동부 국경도시 프셰미실 중심가에 있는 기차역에서였다. 취재를 시작한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나는 난민들을 만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에 갔다. ‘오늘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보자.’ 그때까지도 난민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묻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사실 겁이 났다. 전쟁을 피해 이제 막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에게,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충격과 공포 속에 있었을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 망설여졌다. 그것도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요…”라면서.

그들이 몇날 며칠에 걸쳐 버스로, 기차로, 또 걸어서 국경을 넘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랑하는 남편과 형제를, 또는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고향에 남겨두고 떠나와야 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꼭 기사에 담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전쟁이라는 비극을 마주한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고통스러워하지 않을까. 눈물을 터뜨리지는 않을까.

딸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려고 4박5일에 걸쳐 국경을 넘은 줄리아는 먼 나라에서 온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기꺼히 응했다. 함께 온 열네살 딸은 쉼터 안쪽에 쉬도록 두고 나를 만났다. 그는 30여분 동안 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화가 난다”, “우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줄리아는 한순간도 흥분하지 않았다. 담담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눈물이 고이는 순간이 있었지만 차분히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군사시설 근처 위험한 곳에 살고 있어요.” “남편은 지역 방위군이에요. 전쟁터에서 싸울 거예요.”

7일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바르샤바행 열차를 탄 채 창밖을 바라보는 남성. 폴란드/김혜윤 기자
7일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바르샤바행 열차를 탄 채 창밖을 바라보는 남성. 폴란드/김혜윤 기자

폭탄 터지고, 총 들고, 방공호에 숨고…누군가의 형제·가족들이 죽는다

“남편은 전쟁터에서 싸울 것”이라던 줄리아…누가 이들 일상을 빼앗았나

아침을 맞는 게 두려운 사람들

이른 새벽 그의 메시지를 받고서야 알게 됐다. 모녀는 휴대전화로 고향의 소식을 밤새 새로고침 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 줄리아의 딸은 날이 밝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는 것, 모녀에게 어두운 밤은 너무 무섭고 더 불안하다는 것을 말이다. 2주 동안 폴란드에서 만난 피란민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침을 맞이하는 게 두렵다고, 잠시 눈을 붙이고 나면 또 어딘가에 폭탄이 떨어지고 누군가 다치고 죽었을까봐 두렵다고 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은, 우리 고향 사람들은, 내 가족은 무사한가.

역사의 한 부분을 기록하기 위해 폴란드에 갔고, 그곳에서 줄리아와 ‘줄리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4일 동안의 취재를 마친 뒤 이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 잔혹한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길에서 폭탄이 터지고, 하늘에선 불덩이가 떨어진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방공호 속으로 숨는다. 허기와 갈증에 시달린다. 아빠와 삼촌과 오빠와 동생들은 총을 든다. 다치고, 목숨을 잃는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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