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의 지지자들이 10일 새벽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의회의 불신임안 가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슬라마바드/로이터 연합뉴스
파키스탄 의회가 임란 칸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시켰다. 이에 반발한 칸 총리가 지지자들에게 대규모 집회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파키스탄 정국이 자칫 혼돈으로 빨려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로이터>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파키스탄 의회는 이날 새벽 14시간에 가까운 논쟁 끝에 칸 총리 불신임안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찬성표를 던진 것은 하원의원 342명 가운데 의결 정족수(과반)를 단 2명 넘긴 174명이었다. 만성적인 정정 불안으로 임기 5년을 모두 채운 총리가 전무한 파키스탄에서도 총리 불신임안이 가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파키스탄인민당(PPP)과 파키스탄무슬림연맹 나와즈파(PML-N) 등 야권은 부패 척결과 개혁 등 칸 총리의 공약 이행이 지지부진하고, 코로나19 영향 속에 두자릿수까지 물가가 치솟는 등 경제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지난달 초부터 불신임 투표를 추진해왔다. 특히 집권당인 파키스탄정의운동(PTI) 내부에서도 이탈자가 나온데다, 막후에서 정국을 움직이는 군부 쪽과 인사 문제로 갈등을 빚은 것도 칸 총리의 실각을 부채질했다.
이에 맞서 칸 총리는 지난 3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며 전격적인 의회 해산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파키스탄 대법원이 나흘 뒤 칸 총리의 결정을 ‘위헌’으로 규정하고 의회 복구를 결정하면서 불신임안 표결 처리의 물꼬를 튼 바 있다.
불신임안 통과를 예감한 듯 칸 총리는 전날 밤 연설을 통해 “수입된 정부를 받아들일 수 없다.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지자들에게 전국적인 대규모 집회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파키스탄의 크리켓팀 주장 출신인 칸은 1996년 파키스탄정의운동을 설립한 뒤 기득권 정치가들의 부패 문제를 맹렬히 비판하며 지지를 모았다. 이후 정치 개혁을 열망하는 서민들과 기성 정치세력을 견제하려는 군의 지지를 얻어 2018년 8월 총리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집권 뒤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기 위해 재정건전을 내세우며 가스요금 등을 크게 올리고, 매년 두자릿수 물가 상승을 막지 못하자 주요 지지층인 서민들에게서도 실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8월 정권에 복귀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지원했다는 의심을 사며, 미국의 강한 견제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칸 총리는 이번 불신임 투표 움직임을 두고 야권이 반미·친중 성향인 자신의 실각을 원하는 미국과 결탁했다고 비난해왔다.
<알자지라>는 “불신임안 가결로 칸 총리가 취할 수 있는 대응 조치는 사실상 없는 상태”라며 “대대적인 지지 시위가 이어진다면, 이를 통해 야권을 압박해 조기 총선을 관철시키는 게 유일한 대안일 것”이라고 짚었다. 파키스탄 의회가 이르면 11일 선출할 신임 총리로는 3차례 총리를 지낸 나와즈 샤리프의 동생인 셰바즈 샤리프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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